[기사입력일 : 2010-04-09 12:18]
반주자의길 2(제137호)



1.  초견
 
반주자를 만드는 모든 자격 중에, 악보를 잘 읽는 능력은 음악 연주를 능숙하게 하기 위함이며 정확한 초견은 훨씬 더 중요한 것이다. 반주자의 레파토리는  다양하고 폭이 넓을 것이다. 그러나 악보를 잘 읽는 능력이 보완 해 주지 않는 限 그런 것들이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악보를 잘 읽는 것은 매우 큰 천부적 재능이다. Sight-Reading이 비교적 불충분한 전문 피아니스트들도 있고, 또는 예술가로서, 연주자로서 뒤떨어지지만, Sight-Reading에 있어서 아주 대단한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많은 아마추어 역시 우수한 Sight-Reader가 있다.  학생, 아마추어, 전문가들 중에는 Sight-Reading의 표준이 그리 높지 않으나, 천부적으로 Sight-Reading을 타고나지 않은 이들이 다음의 방법으로서 어느 정도의 위로를 받을 수가 있다. 어느 정도 천부적인 능력을 가진 총명한 학생이 다음과 같이 확실히 설명한 지침에 따라 꾸준히 계속해서 연습을 함으로서 능력의 기준에 도달함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악보을 읽기 이전에 , 단순한지 어려운지 Clefs, Key-signature, Time-signature 그리고 Tempo 같은 모든 예비 명세를 필히 주의 깊게 주목하여야 한다.

악보 읽는 실력을 증진하고자 하는 학생은 매일 일정한 양의 시간을 친숙치 않은 작품의 연주에 쏟아야한다. 그리고 현재 아주 대단히 기술적으로 어려운 작품을 선택  해서는 안 된다; 두뇌는 우선 손가락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을 단지 이해(깨닫기)하기 위해서 집중되어야 한다. 그 후, 선정한 작품이 점점 어려움이 커지며, 학생은 정확히 연주하기 위해서 종국에 가서는 음악 읽는(Reading of Music)연습을 필히 하게 되며 상당량의 연습이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학생은 경험을 쌓게 되며 그것(경험)은 한번에(동시에) 또는 다음번에 많은 모든 반주자에게 주어지는데, 어떤 진행유지를 위한 경험으로서 반주에 있어서 정확치 않고 접합치 않은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나, 반주자가 사전 작품을 연구함 없이 모든 자세한 것을 정신적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경험하는 것이다.

 반주자는 연주하는 동안 순응해야하고 쉽게 해야(단순하게)하며, 매우 어려운 chord를 변형하는 것과 arpeggio passages를 단순형태로 하는 것에 인내를 가져야하며 그러나 작곡자의 의도에 대해, 바르고 적절한 Idea(생각)를 가져야할 것이다.

 눈으로 악보를 읽을 때, 전 음악이 주저나 정지 없이 연주되어야 한다; 복잡한 passages에서 박자를 늦추기 위한 타고난 본능,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서 phrase를 반복하는 것, 혹은 보통 아닌 chord나 어려운 bar 앞에서의 주저함, 대단한 확고부동으로 노력해야 한다.
맨 처음 훈련부터 학생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해야 한다.
  매번  새 작품을 보고 읽으며,  연주회에서 어떤 예술가를 위해서 연주하며, 그리고 연주도중 어떤 일이 일어나도 정지해서는 안 되며 .  동시에 가능한 한 많이 세부묘사의 명암(표현, part-playing 등)을 주시하는데 노력하여야 한다.
 그러나 느린 곡 혹은 적절히 느린 곡은 예외지만 최대의 속도로 작품(pieces)을 연주 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어느 정도 확실한 선까지 연주(연습)한 후, 처음부터 다시 또 두 번째 연주를 해야 하며, 그리고 세 번째는 첫 번 연주 때 못보고 넘긴 것을 두 번째 때는  주의를 할 수 있는 세부묘사의 많은 부분을 주시하여야 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더 많이 주시해야한다. 반주의 형태가 많이 변하는 작품은 사실 박자를 항상 맞추어야 한다.
 박자에 약점인 학생은 박자기를 놓고 연주하거나 큰소리로 박자를 맞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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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Technique

반주전공자를 위한 다음 자격은 충분한 기술이다. 그것은 완전하고 포괄적인 연구과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Amateur와 전문가, 많은 pianist가 있는데 그들은 손가락의 타고난 능력과 악보를 보고 읽는 능력을 날 때부터  타고났다. 악보를 보고 읽는 능력은 programme중 그들 part를 허세 부리거나 흥미를 가지고 연주하지 않으며 전 concert를 통해서 손상 없이 연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type의 피아니스트들은 최고의 Accompanist가 되기는 드물다; 기술적 어려움이 거의 없음으로써 연습을 해야겠다는 것을 느끼지 않는 사람.
 기술을 연습하는 반주자는 그리고 능력이 있지만 완벽하지 않은 Reader, 그가 연주할 반주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을 발견하고, 표현의 미묘한 차이(nuances)를 연구하기 위해 시간을 갖고, 다른 작품들의 내면(내포)의 뜻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고, 그리고 그것에 의해서 프로그램의 자기 몫에 예술가 적 관심의 매우 필요한 척도를 나눌 수 있게 된다;
 
 조직적인 훈련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기술적 능력의 상당한 수준이 주어진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도, 타고난 기술은 모든 요구사항에 맞추기에 좀처럼 충분하지 않을 뿐 아니라 타고났지만 훈련을 하지 않은 pianist는 touch or tone의 질 변화를 주는 힘(능력)을 갖지 않는다; touch 와 tone-color의 변화는 vocalist가 노래의 올바른(좋은) 분위기를 만드(창조)는데 도움을 주는 지배적인 요소들이다.
 이것의 전체적 중요성은 후에 깨닫게 될 것이며, 다른 스타일의 음악반주를 위해 필요한 tone과 touch의 변화가 설명되고 도해된다. 고도의 기술 표준을 취하고 유지 하는 데는 계속적인 연습이 필요하다. 학생은 대중 앞에서 반주할 기회가 있기 전에 매일 연습 항목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에게 필요한 높은 수준의 성취를 그의 목적으로 정해야 하는데 그것은 solo pianist가 되기 위한 공부를 말한다.
 계속적 진지한 연구(공부)가 사회진출을 위한 준비로써 필요할 뿐 아니라, 연주계약 이
 시작되고 학생(반주 공부하는)이 아마추어의 무명에서 전문가의 유명한 신분으로 바뀌어질 때, 그에게는 이전보다 계속해서 조직적으로 연습하는 것이 긴요하며 그래서 그가 마련한 표준이하로는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3. Repertoire


그 다음, 아마 매우 어려운 것, 그의 일(과제)중의 일부는 그의 repertoire를 연구하는 것이다. 반주자는 어떤 것이든 초견에 연주할 준비가 되어있을 지라도, 그가 알고 있는 더 좋은 반주연주를 항상 할 것이라는 것을 기억되어야 한다. Sir Frederic Cowen, 그 자신 일급(일류)으로써 경험이 있는 반주자는 말해왔음; “아무거나 읽지 말라; 모든 것을 알아라.” 그 것은 완벽한 조언이다, 그러나 그 충고는 확고한 것이다. 어쨋든 사람은 가능한 모든 것을 알아야만 한다.
 왜냐하면  눈으로 읽을 때, 명암, phrasing, expression 그리고 해석의 모든 자세한 것을 모두 돌본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반주자의  repertoire 는  모든 음악에 있어 가장 다양한 형태로 표현될 수 있는 부분이다.
첼로와 바이올린을 위한 독주곡, 소나타와 콘체르토, 피아노 삼중주 및 사중주,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아리아 곡들(오페라 이중창, 삼중창) 그리고 다양한 언어 (한국,독일.이태리,프랑스,러시아,영미,스페인,노르웨이등등)로 만들어진 가곡들(소프라노, 메조소프라노, 앨토, 테너, 바리톤과 베이스 곡들) 오보에나 플롯, 클라리넷과 같은 관악기를 위해 만들어진 독주곡의 반주부 등 정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다양하다.
예를 들어 한편에는 Schubert 음악과 다른 한편에 Debussy 음악의 연주기법과 다양한 감각적 접근 방식을 비교해 보면, 이 두 작곡가의 표현방식에는 마치 독일어와 프랑스어가 다르고, Goethe의 시와 Verlaine의 시가 다른 것처럼 극단적으로 다른 양상이 나타난다. 우리 반주자들은 전혀 다른 두 표현방식 모두에 통달해야만 한다.  반주자들은 어떤 상황이든 연주에도 맞출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반주자의 예술성은 시와 음악에 대한 올바른 학습을 통한 지식으로 강화 되는 것을 전재로한다, 이러한 전제에서만이 음악과 시가 요구하는 적절한 박자의 합성과 음악적 강세 그리고 그들의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다. 또한 반주자는 그의 주관적인 감정과 더불어 음악에 의해 더욱 강화되며, 시의 다양한 감정적 요구들을 재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필수 불가결한 지식은 작곡자의 성격에 의해 결정지어지는  스타일이 청중에게  이해되어 지고 감동을 주는 것을 가능 하게한다. 뛰어난 직관력으로 이러한 지식을 쉽게  획득하는 음악도도 있겠지만 훈련에 의한 그 이해력을 발달시킬 수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교육과정인 “본능의 지적화” 인 것이다. 시대와 장소가 다른 시를 이해하고 배우는 데는 단순히  번역문을 통한 일반적인 관념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므로, 올바른 발음과  단어에 숙달하여야 한다. 반주자는 자신이 예술로 승화시킨 음악과 솔로이스트와의 관계를 충실히 유지하기위해서 시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어떻게 발음되는지 내포되어있는 의미는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예술가곡에서 우리는 언어의 액센트와  맞아 떨어지는 리듬과 음악으로 표현되는 시의 깊은 뜻을 온전하게 이해하고 좋은 연주를 하기위해서라도 딕션 공부가 필요 한 것이다. 딕션은 최소한, 독일어, 이태리어, 프랑스어는 알아야하며 높은 목표를 달성하기위해서 반주자는 음악교육이외에도  미학, 언어, 그리고 다양한 시대의 작곡자들이 창조한 성악 작품에 관한  문학교육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만이  작품의 스타일에 관한 반주자의 직간접감각이 특정시대의 시가 요구하는 특유의 스티일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발전되어 질수 있는 것이다.

* 자신의 소리를 들으라

시와 음악이 지닌 고유의 구조적 요구뿐만 아니라 강약, 뉘앙스, 구절, 쉼표 등 작품 자체가 지닌 특징에 대한 끊임없는 인식 이외에도 더욱 중요한 요구 사항들은 주로 듣기와 중요한 관련이 있다. 대부분의 훌륭한 교육을 받은 피아니스트는 듣기가 얼마나 중요한 가치가 있는지를 제대로 인식한다. “자신의 소리를 들어라”라는 말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명령만큼이나 중요하다. 하지만 반주자에게 있어서 이 명령은 더욱 복잡한 문제이다. 반주자는 이 뿐만 아니라 마음속으로 자신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반주자는  성악가이든 기악가이든  상관없이 솔로이스트가  얼마나 많은 양의 연주를 하느냐 하는 점 이외에도 음색의 질에 항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소리와, 그리고 그것이 성악이든 기악이든 관계없이 솔로이스트의 음을 동시에 들을 수 있는 뛰어난 능력의 발달 없이는 양적 문제인 균형 확보와 질적 문제인 동시에 최상의 연주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음의 합성은 그 실현이 불가능하다.


* 상상의 능력과 한계

반주자 자신이 질적으로나 또는 음량으로 풍부한 소리를 갖고 있는지에 상관없이, 반주자는 인간의 음성이 갖고 있는 능력과 한계에 관련한 전문적 지식을 얻기 위해 성악 공부를 해야 한다. 반주자는 사실상 청중석의 맨 첫 줄에서도 그의 음성이 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주의하면서 솔로이스트와 함께 숨 쉬면서 노래해야 한다. 만일 반주자가 이러한 관계를 유지 할 수 없다면,  필연적으로 연주에 피해를 끼치고, 따라서 완벽한 앙상블은 불가능하게 되고 마는 것이다.

성악 반주에 있어서 반주자는 어떻게 프레이징을 할 것인가 하는 점에 부딪쳐 때때로 성악가와의 타협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아무리 뛰어난 소리를 가진 성악가라 할지라도 신체적 제한은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이올린, 첼로, 클라리넷과 같은 기악 반주를 높은 예술적 경지까지 도달하도록 능숙한 반주를 하기 위해서, 반주자는 그 악기들의 능력과 한계 등이 관련된 지식이 있어야 한다. 물론, 모든 악기들을 완벽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한 필수적인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상의 연주를 열망하는 반주자라면 누구나 사용하고 있는 악기들에 관한 실질적 지식이 필요하다.

 


반주자가 인간의 음성이나 악기가 가진 한계를 이해하고,  그 음악적 가치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얼마나 필수적인가에 대해 설명하기 위한 예로서 다음의 유명한 작품이 떠오른다.

 슈베르트의 가곡 ‘가니메드(Ganymed)’이다. 이 곡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구절은 성악가의 주의 깊은 호흡 조절을 요구한다. 성악가들은 이 어려운 구절을 호흡 없이 성공적으로 모면 할수 있지만, 슈베르트는 뒤에 더욱 난해한 구절로 반복되기를 요구한다.

성악가가 불필요한 노력이나, 조절력과 힘의 상실 없이 그 구절의 음악적 그리고 성악적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반주자의 성공적 뒷받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것은 아마 음악의 속도를 감지할 수 없을 만큼만 증가시킴으로써 예술적인 면에 아무런 손상이 없이 음악 처리를 하는 것이다. 약간의 서두름이 시간적으로 적당히 조절되어 그 변화가 아주 미소한다면 그것은 메트로놈 (Metronome)으로만 감지될 뿐이지 청중들이 감지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변화가 너무 완연히 드러난다면, 아무리 성악가가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태연한 표정을 짓는다 해도, 결론적으로는 긴장된 노래가 나올 것이다. 반주자는 때때로 필요한 미세하고 필연적인 속도 조절을 인식하고, 곡이 자연스럽고 필연적으로 진행되도록 조용하고 계속적인 분위기를 제공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그저 솔리스트를 위한 피난처가 아니다. 이것의 실패는 그 연주의 예술적 가치에 번복할 수 없는 해를 끼치는 것은 물론이고,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솔리스트가 부끄럽게 청중 앞에 드러나는 상황을 만들 것이다.

또 다른 예로서는 Bach의 너무나 잘 알려진 기악곡 “G 선상의 아리아”의 경우, 이 곡의 전개부분에서 솔로이스트가 활을 한번 켜서 한음을 오래 지속적으로 연주를 해야 하는데, 많은 솔로이스트들은 이 같은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므로, 피아노 반주자가 감지 할 수 없을  정도로 박자의 속도를 가속하여 연주를 함으로서  솔로이스트를 구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적으로 그리고 기술적으로 숙달된 바이올린이스트에게는 피아노 반주자의 박자속도 조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반주자는 페달 기법을 사용하여 풍부한 음색을 구현 할 수 있어야 한다. 솔리스트를 위한 반주자의 역할은 전체적 음악의 흐름에 밑바탕이 되며 지지적 이면서도 유난히 드러나지 않는 배경 음악을 제공하는 것이다. 만일 반주자가 페달을 너무 많이 사용해서 필요 이상의 피아노 “음색”을 표현한다면, 그것은 항상 지켜져야 하는 섬세히 조절된 균형을 무너뜨리고 마는 것이다. 다시 상세히 말하자면, 피아니스트는 반주를 하는데 있어서나, 아니면 더 쉽게는 독주를 하는데 있어서 비록 그가 페달을 밟으려는 경향이 있겠지만, 그저 단순히 페달을 허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반주자가 제공하는 “배경”의 목적은 아마도, 희귀한 보석을 어떻게 박아 끼우는가 하는 셋팅과도 비교되어질 수 있다. 그 셋팅이 보석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을 강조하기는커녕 지나치게 장식되거나 화려한 색의 사용으로 인해서 그 아름다움이 모호하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유사하게, 피아니스트는 음악의 균형과 부분간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키기 위해 색채에 대해 너무 재미를 들이는 것을 자제해야 한다.

설사 어느 음악에 풍부한 음색을 위해서 페달 사용이 아주 적합하다고 할지라도, 반주자는 이것의 지나친 사용을 삼가야 한다.

사실상, 슈베르트의 “어디로?(Wohin?)’ ‘숭어(Die Forelle)’와 같은 어느 특정 곡에서, 나는 성악가의 섬세한 음색을 그대로 보전하기 위해 페달 사용을 완전히 삼가고  피아노 반주를 한다. 마찬가지로, 세레나데에서도 현의 뜯는 소리를 살리기 위해 반주자는 페달 사용을 삼가야 하겠다. 하지만 어떤 반주자는 흔히 연주에 자신이 없을 때 결점을 감추기 위해 지속적으로 페달을 사용 한다. 훌륭한 연주를 열망하는 반주자라면 인위적 속임이 없는 균등하고 깨끗한 소리를 위해서 어떻게 연주할지를 항상 민감하고 세밀하게 조절을 해야 할 것이다.


Richard Strauss나 Schubert의 “세레나데” 에서도 노련한 반주자라면 여기서 페달 사용을 삼가려 할 것이다. 슈베르트의 ‘세레나데’에서도 정확히 두 박자 길이의 베이스 옥타브를 유지하면서, 오른손으로는 튕기는듯한 가벼운 스타카토를 연주하는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선율적인 피아노 구절에서 몰토 레카토(molto legato)로 연주한다면, 그 의도된 효과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가장 단순한 자연스러움이다. 자연스럽게 꾸밈이 없는 것처럼 보여 지기 위해서 연주자는 더욱 능수능란한 연주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때 반주자는 그의 내적 감찰력 으로 음악 고유가 지닌 균형을 유지하고 솔로이스트의 음량과 음색을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

 반주자는 자신의 두 개의 보표 뿐만 아니라  동시에 솔로이스트의 보표도 함께 초견 으로 읽을 수 있도록 꾸준히 노력하여 발전시켜야 한다. 누구나 능력이 있는 피아니스트는 그것을 해야 되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노련힌 반주자는 지휘자와 같은 지식을 갖고 있어야 하며 이들의 차이는 반주자의 경우 지휘를 하지 않는 것처럼 지휘를 해야 하고,  그 외에  피아노 연주와 그리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것 그 두 가지 역활을  더해야  하는 것이다.

전문 반주자가  되고자 하는 피아니스트는 지속적인 테크닉 연마를 통해서 언제라도 연주를
할 수 있는 준비가 되 있어야 한다. 솔로이스트는 오랜 기간 충분한 연습으로 숙달 된 후
반주자를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기  때문이다.

반주자는 많은 음악인들을 만나게 되며 거대한 음악문화의  큰 본체와 익숙해 질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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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일 : 2010-04-09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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