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0-04-14 13:07]
“한국 오페라 60주년의 회고와 전망”(제145호)



 
 
 

 

오페라는 연주분야에서 유일하게 다른 예술분야, 즉 자매예술이라고 하는 연극적 요소와 기능, 미술의 기능과 그에 따른 요소, 여기에 의상과 소도구에 이르기까지 여러 예술분야가 합쳐진 특유의 무대양식이다. 그러기에 연극, 미술, 무용, 의상이 합쳐진 “종합예술”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여기에 동원되는 출연진도 다른 연주분야가 다를 수 없는 어마어마한 많은 인원이 필요하며, 주역 등장인물 외에도 엑스트라로 출연하는 합창단에 춤을 추는 무용단, 그리고 반주를 맡은 오케스트라에 연출, 장치, 조명, 음향, 의상, 소도구 등의 뒤 스태프까지 합하면 보통 수백 명의 요원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한 번 공연에는 동원인원도 그러커니와 막대한 제작비가 소요되며 최소 수억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이 투입되는 매머드 무대양식이기에 한 번 기획하면 며칠을 연속 공연하기는 하나, 자주 하기는 어려운 연주 형식이다. 그러나 오페라는 스토리가 있고 노래와 춤이 있고 드라마가 곁든 흥미진진한 여러 요소를 즐길 수 있어 호감과 애호를 받고 있는 연주양식이다. 우리나라에서 서구식 음악 무대 양식인, 그 것도 주류를 이루고 온 이탈리아 오페라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48년의 일이다. 따라서 올해가 60주년이 되는 해로 우리의 오페라 역사도 회갑을 맞게 되었으니 그리 짧은 발자취라고는 할 수 없다. 물론 역사상 최초의 오페라는 이탈리아의 페리(Jacopo Reri :1561~1621)가 작곡한 '다프네(Dafne)'가 되는데 이 오페라가 발표된 것이 1594년이라고 하니까 우리나라는 이로부터 354년 뒤에야 오페라가 도입되었다는 말이 된다. 연희 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전신)와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 의과대학교 전신)를 졸업해 의사이기도 한 이인선(1906~1961)이 이탈리아로 유학, 성악공부를 마치고 귀국하자 바로 ‘국제오페라사’라는 단체를 조직하였고 이 단체의 주최로 1948년 1월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인 베르디의 ‘춘희(La Traviata)’를 서울 명동에 있는 서울시공관의 무대에 올렸다. 당시 출연 멤버로는 지휘 임원식, 연출에 연극인 서항석, 주역으로는 이인선, 김자경, 정영재, 고종익, 황병덕, 오현명, 김노현, 박승유 등으로 이민선을 제외하면 출연진이나 뒤 스태프진들 모두가 오페라를 한 번도 구경한 것이 없는 백지상태에서 실수 연발이었으나 당시 장안의 화젯거리가 되어 연일 초만원을 이룬 성황으로 그 해 4월에 재공연까지 하기도 했으나 정부지원이나 사회지원은 생각할 수 없는 어려운 사회 여건이기에 주재한 이인선은 빚더미에 올라앉았다는 뒷이야기다. 출연진 중 황병덕, 오현명, 두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이내 고인이 되었다. 그 후 1948년 5월에는 한불문화협회 주최 김성태 지휘 서항석 연출로 구노의 ‘파우스트’가 국내 초연되었고, 1950년 4월에는 국제오페라사의 두 번째 사업으로 임원식 지휘, 이화삼 연출로 비제의 ‘카르멘’이 국내 초연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오페라사에 특기할 사항은 1950년 5월에 한국 최초의 창작 오페라 현제명 작곡의 ‘춘향전’이 현제명 지휘, 유치진 연출로 국립극장에서 초연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춘향전’은 6·25 한국전쟁 중 피난지인 부산과 대구에서 현제명 지휘 이진순 연출로 재공연 하기도 했다. 그리고 1951년 10월에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주최로 국내 작품 김대현의 ‘콩쥐팥쥐’가 김대현 지휘, 이진순 연출로 역시 피난지 부산과 대구에서 초연되었고, 1953년 10월에는 현제명 작곡의 ‘왕자호동’이 임원식 지휘, 이해랑 연출로 서울시공관에서 초연되었다. 그 후 1955년 11월에 한국 교향악 협회의 비제의 ‘카르멘’이 김생려 지휘, 이해랑 연출로 서울시공관에서 공연했고, 1957년 6월에는 역시 민간 오페라단인 서울 오페라단(현재의 서울 오페라단이 아님)이 임원식 지휘, 이해랑 연출로 베르디의 ‘춘희’를 서울시공관에서, 1958년 5월에는 역시 서울 오페라단이 베르디의 ‘리골레토’를 임원식 지휘, 헤리스 연출로 서울시공관의 무대에 올렸다. 그리고 1958년 10월에는 또 하나의 민간 오페라단인 한국 오페라단이 푸치니의 ‘토스카’를 1959년 4월에는 역시 민간단체인 푸리마 오페라단이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각각 서울시공관에서 공연했다. 그리고 한국 오페라단이 1959년 6월에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와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를, 1959년 10월에는 서울 오페라단이 푸치니의 ‘라 보엠’을, 1959년 11월에는 한국 오페라단이 비제의 ‘카르멘’을, 그리고 고려 오페라단이 김대현의 ‘콩쥐팥쥐’, 1960년 5월에는 역시 고려 오페라단이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1960년 7월에는 푸리마 오페라단이 롯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 1960년 12월에는 한국 오페라단이 베르디의 ‘오텔로’, 1961년 12월에는 푸리마 오페라단이 플로토의 ‘마르타’를 각각 서울시공관에서 선보였다.
이와 같이 해방 후부터 6·25 한국 전쟁과 폐허로 변한 국토의 복구 작업 등 빈곤과 싸우면서 국가 재건이란 당면 과제를 극복해야 할 어려운 악조건 속에서도 오페라 운동은 계속되었다. 당시의 상황에서는 정부의 지원이나 요즘처럼 변변한 기업체나 공장도 없었던 시대, 오로지 성악인들의 열정과 의욕 하나만으로 맨 주먹 일을 시작한 선구적 개척정신, 당시 오페라 한 편이 무대에 오르면 주관자의 집 한 채가 날아간다는 방정식이 유행할 정도였다. 물론 공연 내용이나 기능면에서도 오늘의 시각에서 본다면 무대 구성이나 연출 등 새로운 무대 양식의 창출이나 우리 특유의 연출을 시도할 수 있는 그러한 전위성이나 실험적 기능은 생각할 수도 없고 전통적 무대구성을 어깨너머로 보고 따라하는, 어떻게 보면 서구 선진들의 무대 구성을 모방하고 배우는 극히 어설픈 초창기의 형태에 머문 시기였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도 여러 오페라 작품을 다루고 무대에 올려 반복함으로서 많은 경험과 노하우가 있었기에 오늘의 한국 오페라의 위치가 정착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해방 후 즉 1940년대 후반부터 오페라 운동을 어려운 여건에서 끈질기게 50년대까지 이어왔던 민간 오페라단은 2~3회의 공연으로 여력이 없어 거의 문을 닫아 6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활동이 중단된 채 침체상태를 이어간다. 그러나 다행으로 1961년에 문화공보부가 지원하는 국립 오페라단이 국립극장 소속으로 창단되어 1962년 4월에 장일남 작곡의 창작 오페라 ‘왕자호동’을 이남수 지휘, 오현명 연출로 국립 극장에서 창단 공연을 가지면서 출발해 오늘날까지 오페라계의 중심체 역할을 하며 매년 2,3회의 오페라 공연을 하며 오페라 운동을 주도해오고 있다. 60년대 후반 1968년 본격적인 민간 오페라단인 김자경 오페라단(단장 김자경)이 출범을 하게 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오페라 공연인 48년 ‘춘희’에서 주연을 맡은 이래 꾸준히 오페라 무대에서 열정을 쏟아왔던 김자경이 자신의 오페라단을 창설, 민간 오페라의 길을 닦으면서 소신 있는 오페라 운동을 전개, 특히 유능한 젊은 인재들을 발굴하여 오페라인으로 육성하고 교육하는 열성을 보였다. 매년 1,2회의 국내외 작품들을 무대화하고 국제교류 등 오페라계에 쏟은 그의 열정은 ‘오페라의 대모’란 말을 듣고 있는 그대로 68년 5월 베르디의 ‘춘희’에서 직접 주역 비올렛타역을 맡으며 창단공연을 한 이래 그가 1999년 세상을 떠날 때 까지 계속 되었다. 또한 민간단체로서 큰 줄기 역할을 해온 단체가 서울 오페라단(단장 김봉임)이다. 1975년 7월 임원식 지휘, 오현명 연출로 푸치니의 ‘토스카’를 국립극장에서 창단 공연한 이래 매년 1,2회의 정기 공연과 미국 등 해외 공연을 해오고 있는데 공연비 조달을 위해 집을 저당하고 경비를 지원받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습은 안쓰럽기까지 할 정도로 열정을 쏟아왔다.
우리나라 오페라 운동의 줄기세포 역할을 한 또 한사람이 있다. 국제 오페라단을 1982년에 창단, 푸치니의 ‘나비부인’을 창단 공연으로 매년 1,2회의 정기 공연과 해외 공연, 그리고 외국 성악가를 초청 합동 연주를 하는 등 국제 교류에도 한 몫을 한 단장 김진수(1947~2008)의 끈질긴 의욕과 오페라에 대한 애착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아직 할 일을 많이 남기고 지난 4월 27일 아깝게 세상을 떠났다. 이 밖에 의욕적으로 국내 초연 작품만 공연한 전위성이 강한 오페라 상설무대(단장 김일규), 착실한 단체 운영을 하고 있는 베세토 오페라단(단장 강화자), 그리고 물론 단체명과 단장만이지만 현재 30개가 넘는 오페라단이 있다. 현재는 활동 경기 침체의 여파도 있겠으나 부진한 상태이다.
이제는 우리 오페라계도 선진음악에의 도약을 위한 개혁과 변화의 풍토로 전환해야 한다. 유럽 본고장 국가들은 수도는 물론 지방 조그마한 도시에도 국립 오페라극장이 있고 그 오페라 극장에는 주역 출연자 외에도 합창단, 무용단, 관현악단, 지휘자, 연출자는 물론 장치, 조명, 소도구 등 스태프에 이르기까지 모든 요원이 전속이 되어 매월 봉급을 받는 공무원 신분으로서 연중 오페라 공연을 하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단체명과 단장이 있지만 단원은 한 명도 없는 껍데기 오페라단이다. 하다못해 국립 오페라단도 말이 국립이지 전적으로 전액 지원은 아니고 일부만 하는 것도 잘못이며 국립이란 명칭이라면 전적으로 정부가 운영 책임을 맡아야 한다. 또한 운영상 청중을 의식해야 하는 민간단체와는 달리 국립 오페라단은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국내 초연 작품이나 현대 오페라 등 레파터리 개척에도 나서야 하고 실험적인 전위성도 가져야 한다. 우리 오페라도 이제는 서구 선진들의 모방에서 벗어나 우리 나름의 고유한 연출과 무대 구성을 창조해서 한국 색채의 오페라가 탄생하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국내 초연물은 할 수 없다 하더라도 통속적으로 알려진 작품에 외국 연출자를 초청하는 따위는 이제 지양하고 국내 연출자로 하여금 독특한 새로운 무대 형식을 창출하고 개척하는 전위성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에는 노래만큼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지지 않는 유능한 성악인재들이 많다. 이 인재들의 재능을 활용하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오페라계를 선진국과 같은 전국의 지방도시에도 지금의 시립 교향악단이나 합창단과 같이 시립 오페라단, 도립 오페라단을 설치, 공무원 신분으로 생활을 보장하는 시스템이 꼭 갖추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선진국이 되겠다는 꿈은 버려야 한다.





김형주
[기사입력일 : 2010-04-14 1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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