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0-05-03 09:39]
우리나라 음악 전문교육 어디까지 왔나(제163호)



 

 

일제시대인 1938년 6월 14일 현재 서울시 의회가 사용하고 있는 건물인 당시‘부민관’에서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음대 졸업생인 김동진(바이올린), 김신덕(피아노), 이관옥(소프라노), 이순명(소프라노), 오경심(소프라노), 최영애(소프라노) 등 선구적 신진들이 의욕적인 데뷔 연주를 했던 제1회 신인음악회를 개최한 지 올해로 73회 째를 맞게 된 것이다. 이 역사와 전통은 단순히 기나긴 연륜을 축적했다는 과거사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우리 신진들을 수 없이 배출했다는 실질적인 업적을 의미한다. 이는 신인음악회 출신들이 대부분 우리 음악계의 중견으로 활동하며 음악계를 주도해 온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일제시대 초창기는 물론이고 해방 후 6, 70년대 까지만 해도 신인음악회에 선출되어 출연하기만 해도 일약 스타적 명성을 얻을 정도로 주목을 받게 되는 유명 인사가 되었다. 그만큼 신인음악회는 서울 장안의 화젯거리가 되고 언제나 청중이 초만원을 이루는 축제가 되어 왔다.
그러나 근래에 오면서 출연자 대부분이 외국 유학의 길을 떠나거나 국내 대학원 과정으로 진학하는 학구열이 높아지면서 실제 음악활동의 현장으로 진출하는 데뷔를 전제로 하는 과거 전통적 의미는 희박해진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일반 애호가들의 관심 뿐 아니라 음악계에서조차 이들의 출연을 관심 밖의 일로 치부해버리는 바람직 하지 못한 풍조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초래한 또 하나의 객관적인 요인은 국내 전문 교육기관, 즉 음악대학을 졸업한 것으로는 전문 음악인으로 활동하리라는 인식은 전혀 없고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야 비로서 전문 음악인으로서 활동을 할 사람으로 인정하는, 즉 실력보다는 학벌이나 학위를 중시하는 우리의 사회 편견이 또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구미 선진에서는 음악대학 만을 마치고도 실력만 있으면 자기 모교의 교수로 얼마든지 채용되는 전통이 있는데도 말이다. 이러한 우리의 사회 풍조는 신인음악회를 가볍게 여기는, 따라서 일반 사회의 관심조차 소원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신인음악회는 그 자체로서 여전히 음악계의 발전에 기여하는 가치있는 행사로 존재 가치에는 변함이 없는 비중있는 행사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비록 출연자에게는 중간 평가의 장이 된다고는 하나 앞으로의 학구적 차원에서 비중있는 경험과 평가의 자리가 되고, 보다 중요한 것은 출연자들의 연주를 통해 과연 우리나라 전문 음악교육이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디까지 왔느냐 하는 음악교육의 현실을 살펴보는 중요한 자료와 평가의 현장이 된다는 사실이다.
출연자들은 거의 상급과정이나 외국 유학을 통해 대학원 과정과 최고 연주자 과정 내지는 박사 과정을 마치고 귀국, 국내 음악계에 복귀해서 중견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금년도 제73회 신인음악회는 지난 3월 2일 개막되어 5일까지 4일간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렸는데 여기에는 서울대 음대를 비롯 전국 19개교가 참가, 각 음악대학 금년도 졸업생 중 수석 졸업자나 최우수 졸업자 중 학교 추천을 받은 35명의 신인들이 출연하고 있다.
이를 분야별로 보면, 성악이 10명, 피아노가 7명, 현악이 7명, 관악이 6명, 작곡 2명, 국악이 3명 등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살펴볼 때 과거 성악과 피아노 분야에 편중된 경향을 보였던 출연자의 분야별 분포도가 최근 들면서 여러 분야로 고르게 균형을 갖추어 가는 흐름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과거에 볼 수 없었던 현악의 콘트라베이스라든지 관악의 바순, 트럼본 등이 등장한 바람직한 경향으로 바뀐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과거 독주악기보다 합주악기로 인식된 특수악기들이 독주악기로 그것도 상당한 수준의 연주기능을 가지고 등장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또한 많은 수는 아니라 할지라도 대구, 부산, 광주 등 지방대학 출신들이 대거 참여함으로서 과거 중앙에 편향되었던 출연자 추세에서 균형을 바로 잡은 점 뿐만 아니라 연주 내용에서도 이제는 중앙과 지방의 기능상의 격차가 거의 없는 연주 수준이 고르게 항상되고 있다는 경향 등은 긍정적 현상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지방대학의 교육환경과 지도 기능이 과거와는 달리 획기적으로 개선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특히 이제는 지방대학과 지도교수가 대부분 구미 선진 유학파에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어 그만큼 지도교수들의 지도기능의 질이 중앙과 별 차이 없이 향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금년도 출연자들의 전반적인 연주를 살펴볼 때 신인으로서 그 한계를 넘어선 특출한 재능을 소지한 출연자가 많았던 지난 해에 비해 금년에는 미래를 바라보는 재목감으로 지목할 만한 신인이 3, 4명으로 줄어든 것은 아쉬움으로 남지만, 그러나 가장 중요한 연주인으로서 기초교육을 성실히 습득하고 연주기능의 바탕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큰 수확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왜냐하면 대학교육은 장차 연주인으로서 또는 작곡인으로서 자기의 예술세계를 독자적으로 개척해 나갈 자기만의 고유 음악예술 범주를 넓혀갈 기초 능력을 교육하고 지도하는 교육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음악대학은 과거 음악의 역사와 과거 음악의 기능을 충실히 습득하고 연구함으로서 이 역사와 전통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대의 사조에 의한 현대미학을 개척하고 이론 체계를 기능화하는 작업을 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현대 음악인에게 주어진 과제이자 사명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볼 때 근래는 물론 이번 출연분야에서 두드러지게 약진을 보여 준 분야가 국악분야로 가야금에 2명, 거문고 1명 모두 3명이 출연했는데 모두 고르게 단단한 기초기능을 바탕한 견실한 격조있는 연주기능을 보여 주었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국악은 우리의 전통음악이니 당연하다 할 지 몰라도 그렇지가 않다. 왜냐하면 우리 현대인들은 알게 모르게 시대의 풍조와 사고방식은 물론 생활양식에 이르기까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구문화에 동화되어 가고 또한 많은 분야가 서구화되어 있다.
따라서 점차 우리도 우리의 전통에서 멀어져 가고 그만큼 우리의 전통음악을 하기가 외국 사람들처럼 어려워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렇기에 국악 연주인들이 근본 전통의 원리를 착실히 익히고 기초 연주기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편 기악분야는 대체로 연주기능면에서 크게 처지는 사람을 볼 수 없을 정도로 고른 연주력, 특히 주목하는 기초기능을 모두 착실히 갖추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는 그간 교육과정이 비교적 바르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반증도 된다.
그러나 대부분 기교력 처리에 신경을 쓰고 그에 매달린다는 인상이 깊다. 물론 이제 기초교육을 마치고 무대 경험이 미숙한 신인들에게서 성숙한 음악성이나 내용상의 원숙한 표현을 바란다는 것은 무리일 지 모르나 전반적으로 악상의 추구나 주제의 표상의식에 소홀한 면이 전반적인 추세로 보여 우선 내용추구의 노력이나 의지라도 보여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남았다. 연주는 음악을 창조해 내는 것이 목적이고 기교는 그 수단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식해 주었으면 한다.
그리고 내용표출의 의지도 강해야 하지만 문제는 그 내용 악상의 표출력, 즉 표현법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물론 악보에도 발상기호에 강, 약표에 속도에 대한 기호까지 여러 연주와 표현에 관한 지시가 적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원리는 강성부와 약성부의 대비, 흔히 ‘뉘앙스’라고 하는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대비 등 균형있는 처리, 많은 변화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통일성을 갖는 변화가 되어야 하는,
즉 ‘대비와 균형, 변화와 통일’은 표현의 원리이자 미학의 기본 원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으로 본다. 연주분야에서도 성악분야에는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대체로 소리는 모두 좋은 미성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 소리를 성악에 유리한 소리로 만들 발성법을 제대로 갖춘 사람은 겨우 한 두사람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서 공명작용에 의한 알차고 풍만한 발성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소리는 성대의 진동에 의해 발생되지만 이를 몸에 잇는 공간을 통한 공명작용, 즉 배를 비롯한 가슴, 식도, 입, 코, 머리 등 신체의 모든 공간을 동시에 공명시키는 방법, 즉 몸을 하나의 울림통으로 보고 공명시키는 발성법, 그리고 이를 홀소리 발성과 닿소리 발성을 명확히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다음은 출연자 거의가 발음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노래는 가사, 즉 시에서 시작해서 시로 끝난다. 입을 많이 움직여 발음을 명확히 함으로서 시성(詩性)에 쉽게 접근하게 해야 한다. 특히 우리말 발음에서 더욱 그렇다. 다음은 어휘에 억양이 살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창법에서 액센트는 특히 힘을 넣는다는 뜻이지만 우리말의 억양이란 어휘는 단순히 힘만 넣는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정서와 체질이 묻어나는 뉘앙스의 감정까지 곁든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가창법에서도 억양은 물론, 내용이 시정(詩情)에 따른 섬세한 표정이 있는 표현법이 따라야 한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탈리아 가곡이다. 오페라는 이탈리아 창법, 즉 ‘벨칸토’창법으로 불러야 하고 독일 가곡은 독일 창법, 프랑스 가곡은 프랑스 창법으로 불러야 하듯이 우리 가곡은 한국의 창법으로 불러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우리 가곡을 이탈리아 창법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니 우리 고유의 정서나 체질이 살 리가 없다. 아니 우리나라에는 아예 한국 창법이란 말 자체가 없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출연자 모두가 약속이나 하듯 앞에 우리 가곡, 그것도 예술가곡이 아니라 일반적인 통속적으로 알려진 대중가곡을 부르고 그 뒤부터가 진짜 실력을 보여 줄 노래라는 듯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똑같은 방식이 이어졌다.
이는 우리 성악계의 우리 가곡 경시 풍조를 그대로 보여주는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이 순서가 반대로 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은 작곡분야다. 예년의 3, 4명에 비해 금년에는 2명으로 줄어 들었다. 두 사람 모두 전위성을 지향하는 스타일로 비슷한 구성을 하고 있었는데, 물론 전통 보수에 저항하면서 새로운 전위성을 추구하는 것은 좋은 일이고 그것이 시대의 필연성일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라도 일단 작품 창작이란 작업이라면 그 작품성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즉 말하고자 하는 정신 기조, 형이상학적 메시지를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정하고, 그에 따른 표현 수법을 정하면 여러 기법과 구성법을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서는 여러 현대 기법의 시도와 소리가 존재할 뿐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성이나 작품성이 불확실한 대로 짧게 끝나 버린 시도에 그친 아쉬움을 주었다. 작품이란 작곡자가 작품에서 무엇을 의도하고 청중에게 무엇을 줄 것인가를 명확하게 표출해야 한다. 즉 작품의 목적의식이 뚜렸이 살아야 하고 작품으로서 존재가치가 인정되어야 한다.
신인음악회는 남의 일이 아니라 지도하는 교수들의 일이고 우리 음악계의 책임이다. 그렇기에 현장에 나와 앞으로 우리 음악계를 이끌어 갈 신진들의 연주를 통해 우리 음악교육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김형주
[기사입력일 : 2010-05-0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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