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1-08-19 13:12]
음악계를 대표하는 유일한 공인단체가 한국음악협회다(제174호)



음악협회의 기능과 사명
 
 
 

 

사람은 싫으나 좋으나 인간사회에서 사는 이상 인간사회의 조직원으로 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사회 자체가 조직사회이기 때문이다. 태어나면 가족이 한 조직의 구성원이듯, 학교에 가면 학생이란 학교의 조직원으로, 직장에 가면 직장이란 조직의 조직원으로, 또한 사회에 나가면 여러 사회단체의 조직원으로 조직의 제약 속에서 공동생활을 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람들은 일생 조직의 구성원으로 살다가 생애를 마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조직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겠다고 사람이 없는 곳, 이를테면 무인도 같은 곳에서 산다는 것은 어림도 없고 무모한 짓이다. 인간사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생활에 필요한 여러 사회기능을 분담해서 제공해 주지만 그 모든 사회기능을 고스란히 스스로 혼자서 다 해결해야 하기에 힘들고 고되고 불편하기 짝이 없을 뿐더러 무엇보다 고독감의 공포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가장 큰 장애요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인간사회는 공동생활을 하면서 각기 전공 분야별로 우리들이 사는데 필요한 사회기능을 나누어 마련해서 제공해 주기도 하고 인간교류를 통한 의리와 인정으로 훈훈한 가족적 분위기를 조성해 주기에 이 사회가 살만한 곳이라는 것이다.

조직이란 단순한 개인 대 개인의 결합에 그치지 않고 그 기능의 역학적 배가능력이 무한대로 확대되고 증폭되기에 조직의 제도화에 더욱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 또한 우리 인간사회의 실상이다.
음악계의 대표적인 조직인 한국음악협회(이사장/김용진)가 지난 1월 25일 서울 동숭동 흥사단 강당에서 2011년도 총회인 제50차 정기총회를 가졌다. 이는 50번째의 모임으로 반세기의 결코 짧지 않은 50년의 역사를 이어 왔다는 말이 된다. 한국음악협회는 우리나라 음악인들의 총체적 집결체로서 우리 음악계를 50년이란 긴 세월동안 온갖 풍상 속에서도 중단하지 않고 음악계의 중심체로서 우리 음악계를 이끌어 온 단체다.
그러한 한국음악협회가 1960년대 초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에서 솟아난 것도 아닌 우리 인간의 모든 역사가 그러하듯이 태동의 전신과정을 거쳐 이어온 것이다. 한국음악협회의 전신과정은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우리나라에 서구음악이 도입된 초창기, 즉 우리의 체질과는 전혀 다른 서구음악이 도입된 초창기, 아직 낯선 서구음악이 정착도 하지 못한 시대인 1932년 4월, 당시 미국 시카고 음악대학을 졸업하고 현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전문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던 현제명을 중심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음악 동호인적인 조선음악가협회를 창립했는데 회장에 현제명, 부회장에 박경호, 김영의 등이 인선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조선음악가협회는 일제하에 사찰당국의 감시가 심했던 관계로 자유로운 음악활동을 할 수 있는 환경여건도 아니었기에 음악인의 수로나 활동 범위로나 소규모의 친목단체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러나 8,15 해방으로 자유를 찾았고 비록 미군정 하에 있었지만 가까운 장래에 우리 정부가 수립된다는 전제가 있었기에 우리는 자유로운 음악활동을 할 수 있었고 일본이나 중국, 그 밖에 해외에 있던 음악인들이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처음으로 고려교향악단을 비롯하여 연주 단체를 창단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사회 불안은 가중되어 안정을 찾지 못하고 음악계도 남노당의 좌익계열인 조선음악가동맹과 기존의 음악가협회와 서로 대립적으로 다투게 되고 자연 음악인들도 두 갈래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가 1948년 수립되고 좌익계열에 대한 검속이 강화됨에 따라 조선음악가동맹의 음악인 상당수가 월북하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는 6,25 한국전쟁까지 이어졌는데 그 사이 1949년 11월 기존 조선음악가협회가 명칭을 대한음악가협회로 개칭하면서 개편되었는데 역시 현제명을 회장으로 재 선출하게 된다.
이 대한음악가협회는 소규모이긴 하나 음악경연대회와 잘해야 연간 한 두 차례에 불과하지만 음악회 등을 주최하는 등 6,25 한국전쟁 중 잠깐 쉬기는 했으나 그런대로 활동을 1958년경까지 이어가게 된 것이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서울이 수복되면서 복구사업이 어느 정도 진척되면서 사회가 안정되자 음악활동이 재개되고 음악단체의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한국문화단체총연맹이 결성되고 한국음악단체연합회가 그 조직 속에 가맹이 되었다. 그렇게 되자 기존 대한음악가협회와 한국문화단체총연맹의 음악단체와의 관계가 대립되는 상황이 되어 이러한 관계는 결코 음악계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여론의 대세에 의해 한국음악단체연합회는 한국문화단체총연맹에서 탈퇴하고 1958년에 통합작업에 뛰어들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만다.
그러나 그 후 양 음악단체의 통합작업에 대한 끈질긴 노력 끝에 1961년 비로소 음악계가 총체적 통합체제인 오직 유일한 음악단체인 한국음악협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1961년 10월 7일 중앙공보관에서 양측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양 협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한다는 선언이 있었고 이어 민족음악의 발전과 국제적인 음악문화 교류를 통한 음악인의 지위향상과 권익신장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음악단체인 ‘한국음악협회’를 창립하게 되었다. 이 때 초대 이사장으로 이유선, 부이사장에 조상현, 한규동이 선출되었다.
그리고 한국음악협회가 공인단체로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법적 근거가 있어야 하기에 1961년 11월 24일 공보부에 사단법인 설립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한편 사회 문화단체의 통합이라는 당시의 정부정책에 의해 1962년 1월 5일 창립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에 한국음악협회도 산하단체로 가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해 1월 26일 공보부에 법인체로서 신청한 한국음악협회가 공보부장관 명의로 정식 사단법인체 설립인가가 나왔다.
그리고 그 해 2월 23일 서울지방법원에 제488호로 법원등기를 마치게 된다. 이로써 통합된 음악협회가 사회문화예술단체로 명실 공히 사회공인단체로 기반을 닦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의 한국음악협회의 위상이다. 음악협회의 조직이나 운영목적은 협회의 정관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음악인의 지위향상과 권익신장, 그리고 민족음악의 향상을 도모하고 국제적인 음악문화교류에 두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회단체가 그러하듯이 음악인들의 친목이 일차적인 목적이 되고 있다. 이는 음악협회가 법적인 행정기구도 아니고 행정기관에 소속된 위임기관, 즉 공공기관이나 심의기구도 아니라는 말이 된다.
그렇기에 개인이나 사회에 대해서 제도적인 구속력을 갖는 기관도 물론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음악협회는 단순한 회원들의 친목기구로만 끝나는 조직은 아니다. 왜냐하면 이 단체는 음악예술의 창조적 기능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는 전문 예술인들의 모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작 작업이나 활동에 따른 사회적 신분보장이나 작업에 따른 사회제도와 법적인 보장의 문제, 나아가 정부의 정책입안이나 그 시행과정에 참여하는 일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의 사회참여의 문제가 따르게 되어 음악협회는 음악인의 권익옹호나 신분보장에서 나아가 음악행정과 국가정책에 이르기까지 음악발전에 따른 필요한 모든 분야에 관여하게 된다.
음악협회는 이러한 사항에 관해 회원들, 즉 작곡인 이나 연주인들의 음악활동에 따른 환경개선과 요구사항 등 음악계의 요청과 중지를 수렴해서 유관 행정기관에 건의하고 요청하는 행정적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오늘날 음악계에도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단체들이 생겨났다. 아마 수백여 개는 되리라 짐작된다. 목적을 같이하는 작곡인 끼리 모여 작곡 단체를 조직하고 성악인 들은 뜻을 같이하는 성악인 끼리 단체를 조직하고 있다. 피아노계는 물론이고 현악계든 관악계든 하다못해 타악계도 단체 조직을 가지고 있다. 조직의 힘은 모든 면에서 개인보다 우위하고 그 효과가 개인보다 배가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연주단체에도 사단법인의 법인체로 문광부에 등록된 단체들이 많다. 그렇다고 같은 법인체인 음악협회와 동격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다른 어떠한 단체도 음악협회와 동격일 수는 없고 모두 음악협회의 산하단체 격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누가 뭐래도 한국음악협회는 음악계의 대표 단체이자 음악계의 줄기세포이자 중심체이고 리더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음악계 전반의 과제와 문제점을 해결해야 하고 행정적 정책적 차원에서 음악계를 대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즈음 음악협회는 자체 행사 위주의 운영방침에 여념이 없고 그에 매달린 상태다. 마치 다른 연주단체들과 동격이 되어 자체 행사에만 얽매어 정신이 없다는 인상으로 외부에 비치고 있다. 이는 크게 잘못이다.
음악협회는 음악계의 대표 단체답게 음악계 전반에 걸쳐 살피고 분석해서 우리 음악계의 당면과제가 무엇이고 문제점이 무엇이고 또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찾아내어 그의 해결책을 강구하는 필요시 주무부나 행정기관에 건의하고 탄원하는 직접적 행동으로 앞장서는 적극성이 바람직하다. 물론 정부의 정책이나 시책에 대한 협의나 자문도 음악계를 대표해서 해야 할 일이고 음악인들의 음악활동에 대한 환경개선에도 노력해야 하리라 본다.
따라서 현재와 같이 음악협회가 자체 행사에만 매달리게 되면 음악계 전반에 대한 관심이 소홀하게 되기 쉽고 자연 회원들에게 ‘협회가 우리에게 해 준 것이 무엇이 있어?’라는 불만도 듣게 될 수 있다.
그렇기에 현재와 같이 음악협회가 자체행사에만 매달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며 다른 단체가 할 수 없는 이를테면 ‘대한민국국제음악제’ 등과 같이 3 ~ 4개 정도의 행사로 줄이고 음악인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여건 개선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필자도 40여 년 전 주장한 바 있거니와 음악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서울창작음악제’와 같은 행사에 모처럼 작품을 썼지만 발표할 기회가 주어지질 않는 우리의 각박한 환경 때문에 창작발표회를 만들자고 주장했지만 오늘날에는 작곡단체가 많아 각기 단체마다 자체적으로 신작발표회를 하고 있어 굳이 음악협회가 행사를 주관하지 않더라도 창작발표가 위축되거나 창작 진흥에 하등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말이다. 가뜩이나 예산도 없어 고민하는 처지에서 행사를 대폭 줄이고, 대신 정책자문과 음악환경 개선과 같은 보다 넓은 의미의 지원을 하는 음악협회로 변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앞서야 할 것은 협회는 회원, 즉 음악인들을 위해 무엇을 도와야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하고, 음악인들은 협회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 준 것이 있느냐고 불평하기에 앞서 협회를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는 서로 협력하고 화합하는 풍토가 앞서야 하리라 본다.





김형주
[기사입력일 : 2011-08-19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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