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4-08-29 17:54]
이윤형의 음악가이야기-구스타프 말러



우리 스스로가 이해하고 만들어가는 음악가

스타프 말러(Gustav Mahler, 1860-1911, 보헤미아 칼리슈트 - 현, 체코 칼리스테)

 

얼마 전 인터넷 신문기사에 인사동 사찰음식전문점 ‘산촌’을 운영하는 김연식님(정선스님)이 면도날 7만개를 가지고 ‘구스타프 말러의 몽유도원도’라는 예술작품을 완성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구스타프 말러의 9번 교향곡'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면도날이 적합하다고 느꼈다며 어떤 사람이 어떤 용도로 사용하는지에 따라 좋은 쪽 혹은 그렇지 않은 쪽으로 사용되는 칼의 이중성과 말러 음악의 염세적인 분위기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 어린 메시지의 공존을 빗대어 작품에 표현했다고 했다. 말러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말러에 대한 음악을 접해보지 않은 나로써는 이번 기회에 말러의 교향곡 9번을 들으며 그토록 어둡고, 무언가 자기중심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말러와의 만남을 시작해 본다.

 

말러의 시작

구스타프 말러는 마부였던 아버지 베른하르트 말러와 비누제조업자 아브라함 헤르만의 둘째 딸 마리 헤르만 사이에서 1860년 7월 7일에 태어났다. 베른하르트는 구스타프가 간난아기였던 시절 증류주 공장을 인수하여 중산층 유대인 사회의 중심인물이 되어 있었다. 한편 구스타프는 열네 아이들 중 둘째였다. 그래서 부모님으로부터 충분한 관심을 받기는 어려웠으며 구스타프가 열네 살 때 동생이 숨지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이러한 어릴 적 경험은 훗날 어린이의 죽음과 관련된 곡(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을 만드는 주제가 되기도 했다.

말러는 열 살에 첫 리사이틀을 가질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고 1875년 9월, 빈 음악원에 입학하여 엡스타인에게 피아노를 배웠다. 또한 작곡가 브루크너(1824-1896) 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며 그는 성장해왔다. 말러는 지휘도 하는 작곡가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작곡도 하는 지휘자로 더 통했다. 그만큼 지휘자로써 많은 활동을 했고 오페라 지휘자로는 지지를 받았지만 작곡한 음악으로는 종종 외면을 당하기도 했다고 말러의 아내의 회고록에 나타나있다.

 

 

말러의 가족사(家族史)

말러는 1901년 11월 작곡가였던 알마 쉰들러(1879~1964)라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나이차만큼이나 어려웠던 관계에 있던 두 사람은 1902년 5월 9일 결혼을 하게 된다. 1902년 첫째 딸 마리아(푸치 라는 별명을 가짐)를 낳았고 1904년 둘째 딸을 낳게 된다. 하지만 마리아의 출생 후부터 시작된 아내 알마와 말러의 관계 악화는 둘째 아이 안나(구키)의 출생 후 더 깊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결혼 생활이 남편을 위해 조수나 보모 노릇 하는 일로 여겨지며 싫증을 느끼게 된 것이다. 많은 나이차 만큼(19세)이나 생각이나 마음가짐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러던 중, 1907년 네 살짜리 딸 마리아가 성홍열로 세상을 떠나게 되고  말러가 심장 이상 진단을 받게 된다. 이러한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 관계를 지속하던 두 사람은 1910년 여름, 말러가 작곡에 열중하기 시작할 때쯤 아내 알마는 요양소로 가게 되고 그곳에서 독일인 담당의사는 우울증 증세의 알마에게 춤을 권했고 그곳에서 발터 그로피우스라는 청년을 알게 되었고 이것이 말러와 알마의 관계를 파경으로 치닫게 한다. 바로 그로피우스가 알마를 원하게 되고 결국 아내와의 관계는 끝을 보게 된다. 그리고 나서 얼마 후 심장 질환 악화로 1911년 5월 18일 세상을 떠나게 된다.

 

 

말러의 대표곡

교향곡 1번 (거인) -1888년에서 2년간, 말러(오스트리아)는 부다페스트 왕립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이 곡을 완성시켜 초연을 자신이 직접 지휘했다. 이때 이 교향곡에 ‘거인’이라는 제목이 붙었고, 이는 당시 독일 낭만파 작가인 장 파울의 유명 소설에서 따온 제목이었다. 초연 때 말러는 자기 방식으로 설명하는 프로그램 노트를 덧붙였는데 새벽에서 만물이 깨는 광경부터, 행복과 사랑, 우울함 등으로 이어지는 피날레까지를 설명했다.

교향곡 2번 (부활) – 말러는 이 곡으로 작곡가로서의 야망과 자신감을 더욱 더 표현했다.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이전보다 더 확장시켰고 무엇보다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 아픔을 겪는다. 말러는 2번 교향곡에 붙인 다양한 글들에서 삶과 죽음의 의미를 고찰한 흔적이 보인다.

교향곡 5번 – 장엄한 장송 행진곡 느낌으로 어둡게 시작한다. 하지만 스케르초 부분에서의 극단적인 곡의 대조는 몇몇 평자들로 하여금 ‘정신분열증적’ 이라는 평을 받도록 했다. 5번 교향곡의 마지막 부분은 긍정의 무드로 해석할 수 있지만 초반 악장의 엄숙하고 어두운 느낌을 애써 감추려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다.

 

 

말러와의 작별

당시 말러의 교향곡과 연주를 풍자한 삽화를 보면 뭔가 난잡하면서 어렵단 생각이 든다. 다양한 악기, 소리를 이용해서 자신만의 희로애락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곡을 만들었다고 보여진다. 그와 동시에 말러는 예술과 인생을 따로 보지 않고 삶과 죽음 그 자체를 자신의 음악에 담은 인간적인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말러의 11개의 교향곡들 중에 앞에서 소개하지 않은 말러의 교향곡 9번 마지막 4악장과 교향곡 10번을 한번 들어보자. 교향곡 9번의 마지막 부분이 상당히 인상적인데 무언가가 지극히 조용하게 서서히 머나먼 미지의 곳으로 끝없이 가는 듯하게 마무리가 된다. 정말 고요하게 끝나는데 그 부분을 작곡하는 순간의 말러는 어떠한 상태였을까 하는 궁금증과 함께 고요하게 나를 돌아보게 된다.

교향곡 10번은 9번이 멈추는 그곳부터 시작하는 느낌을 준다. 영원히 꺼져가던 불빛이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불빛으로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이 곡 속에서 나는 아내로 인한 정신적 갈등, 고통 속의 말러를 떠올려 보게 되었다. 시기적으로 아내와의 결별의 시기와 맞물리기 때문이다. 어쨌든 말러는 완전한 곡으로 완성하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게 되는데 말러의 교향곡 전체가 대체로 어둡고 음산한 느낌을 받게 하지만 “교향곡은 세계와 같아야 합니다. 모든 것을 포용해야 합니다.” 라는 말러의 말 덕분일까 오늘날 많은 음악 애호가들은 그의 개성 있는 곡들을 끊임없이 사랑하고 있는 듯하다.

 





[기사입력일 : 2014-08-29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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