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4-12-15 13:58]
이윤형의 음악가 이야기
작곡가 ?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을 중점으로’   

 쇼스타코비치 (Dmitrii Dmitrievich Shostakovich)출생?: 1906년 9월 25일 (러시아) ?사망?: 1975년 8월 9일?가족 : 아들 막심 쇼스타코비치 -지휘자학력 : 페트로그라드 음악원 수상 : 1951년 스탈린상 (10의 시)경력 : 1945 레닌그라드 음악원 교사

【주요작품】교향곡 제1번 f단조 Op.10, 교향곡 제3번 「5월 1일」 E♭장조 Op.20, 교향곡 제5번 d단조 Op.47, 교향곡 제6번 b단조 Op.54, 교향곡 제7번 「레닌그라드」 C장조 Op.60, 교향곡 제9번 E♭장조 Op.70, 교향곡 제10번 e단조 Op.93, 교향곡 제11번 「1905년」 Op.103, 교향곡 제15번 A장조 Op.141,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a단조 Op.99, 오라토리오 「숲의 노래」 Op.81

<쇼스타코비치의 삶>

1906년 9월 25일,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고 자라 페트로그라드 음악학교에 입학했다. 작곡을 시타인베르크에게, 피아노를 오토 니콜라이에프에게, 화성과 대위법을 소코로프에게 사사했다. 19세 때 「제 1교향곡」을 작곡했는데 1926년 5월 12일에 레닌그라드 필하모닉 교향악단에 의해서 초연되자 순식간에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오늘날의 명성을 약속받았다. 1927년에「제2 교향곡」을, 이어 베토벤의「제9 교향곡」을 본떠 끝악장에「메이 데이 찬가」를 삽입한「제3 교향곡 메이 데이」를 완성했다. 그리하여 그는 차례로「제4」에서 「제15」까지의 교향곡을 세계의 악단에 내놓았으며 극적인 구상 아래 작곡된「제7」로는 스탈린상을 받았다.「제8」은 1943년 여름에 작곡되었는데 당시 소련은 스탈린그라드의 전승(戰勝)에 의해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았을 때였으며 이「제8」은 가장 뜻 깊은 역사적인 시기에 초연된 셈이어서 그는 이 곡에 대해‘인생은 또한 즐겁다’라는 단서를 붙일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이데올로기가 없는 음악은 있을 수 없다’라는 주장 아래 작곡을 진행하는 신시대의 음악가이기도 했다. 교향곡 15개와 가극, 발레곡, 영화음악, 부수음악 등 많은 작품을 남기고 1975년 8월 9일 모스크바에서 타계했다.

<쇼스타코비치 첼로 협주곡 1번>Shostakovich: Cello Concerto No1 op.107

  쇼스타코비치(1906-1975)가 1959년 9월에 작곡하여 같은 해 10월 4일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학교 홀에서 므라빈스키 지휘, 헌정자인 로스트로포비치의 연주로 초연되었다. 1959년 11월 7일, 유진 오먼디가 지위하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로스트로포비치를 초청하였고 로스트로포비치는 3일 만에 곡의 모두를 암기하고 연주하였다고 한다.  이곡에서 프로코피에프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와 비슷하게 팀파니의 연주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그 작품과 만났고 또 그것을 존경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첼로 협주곡을 쓸 수 있었다고 쇼스타코비치는 술회하였다. 서정성과는 거리가 먼 1악장이 다른 모든 악장들과 전혀 다른 이질감을 들려주기 때문인지 그것을 제외하고 악장 간 쉼없이 계속적으로 연주된다. 다양한 악기들이 포함되는 협주곡인데 피콜로, 콘트라바순, 호른, 팀파니, 첼레스타 그리고 여러 현악기가 있다. 다작의 작곡가이긴 하지만 쇼스타코비치는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협주곡을 2곡씩, 모두 6곡의 협주곡만을 작곡하였다.?그 중 첼로 협주곡 1번은 2번보다 자주 연주되는데 전체적으로 동적인 전개를 보여주며 러시아적인 이미지를 풍부하게 담고 있는데 절제된 슬픔과 강한 의지가 동시에 살아있는 느낌을 준다. 쇼스타코비치 자신이 이 곡에 대해서 "나는 단순하고 작은 주제를 잡고 그것을 최대한 발전시키려고 했다"고 말했다. 1959년 여름은 쇼스타코비치에게 있어서 운명적인 시기였다. 그는 당시 레닌그라드(이제는 원래 지명인 성 페테르부르크로 바뀜) 근교에 위치한 코마로보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1953년 이 곳에서 그는 스탈린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해 교향곡 10번을 작곡한 바 있다. 그러나 2년 뒤 그림 리퍼(역주: 해골 모습에 긴 망토를 걸치고 큰 낫을 든 죽음의 사신)가 쇼스타코비치의  가족을 찾아왔고 1954년 말, 그의 부인인 니나 바르사르가 결국 불치의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이 병마는 아직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던 쇼스타코비치에게도 몰아닥쳐 치명적인 병을 안겨주었다. 그는 마르가리타 카이노바라는 젊은 여인과의 사랑과 새로운 결혼을 통해 구원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1959년 여름, 그는 코마로보의 한 작은 도시에서 안식처를 발견했고 이곳에서 그는 이혼 후 아내가 부부의 거처였던 모스크바를 떠날 때까지 머무르게 되었다. 자신의 급박한 결말을 받아들여야 했던 쇼스타코비치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첼로 협주곡 1번을 작곡한 것이다. 【출처:네이버 백과사전, 블로그】

 <곡 설명> 모두 4악장으로 구성되며 제 2악장 모데라토가 충실한 내용을 지니고 있다. 1악장은 조금 빠른 템포의 긴장감과 유연성을 가지고 있고 힘차게 분출하는 호른 연주가 특징이다. 2악장에서는 현악기 서주가 서정적인 분위기로 등장한 뒤 호른 독주가 나타나면서 첼로 독주를 알리고 있다. 첼로와 바이올린의 대화에서 이 작곡자가 지니고 있는 깊은 서정성을 충분히 느끼게 한다. 3악장 카덴차는 오보에와 클라리넷, 현악기의 테마 위에서 첼로 솔로가 화려하게 장식한다. 4악장은 프렌치 혼이 주요 테마를 반복하며 첼로솔로와 목관 악기군의 합주로 인상 깊게 마무리 된다.?이 곡은 한번 들으면 알 수 없다. 박자가 어렵고 엇박이 많아 처음 듣는 사람은 어려운 곡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악보 또한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그렇지만 서너 번 정도 들어보면 정말 매력적인 곡으로 쇼스타코비치의  열정과 강렬함이 느껴지는 멋진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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