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5-07-16 16:42]
음악가 이야기 - 브루흐[Bruch, Max Karl August]
“콜 니드라이”를 중점적으로


ㆍ1838년 生 ~ 1920년 卒

ㆍ국적 : 독일의 작곡자, 지휘자

ㆍ주요작품 :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 g단조 Op.26, 「콜 니드라이」Op.47,

「스코틀랜드 환상곡」 Op.46

 

<생 애> - 1838년 1월 6일, 프러시아의 수도 쾰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어머니로부터 최초교육을 받았으며 음악적 기본교육은 본에서 받았다. 14세 때 모차르트 협회로부터 4년간 장학금을 받게 되어 쾰른에서 힐러, 라이네케, 브뤼닝에게 음악 공부를 더 할 수가 있었다. 1858년부터 3년간 쾰른에서 교사로 지냈으며 괴테의 시에 곡을 붙인 희가극「해학과 책략과 복수」를 썼으며 가이벨의 시『로렐라이』를 바탕으로 3막의 가극을 써서 만하임에서 상연(1863)하기도 하였다. 1865년부터 1870년에 걸쳐 코브렌쯔 음악협회의 음악장에 이어 사바르쯔부르크 대공의 궁정 예배당 음악장으로 취임했다. 40세 때인 1878년에 베를린에서 시테른 성악협회의 지휘자가 되었고 1880년에는 리버플 필하모닉 협회의 지휘자로 취임하기도 하였다. 3년 동안 영국에서 활약한 뒤 독일로 돌아가 약 20년간 브레슬라우와 베를린에서 지휘자 및 교수를 역임했다. 노후에는 베를린 교외에서 편하게 여생을 보내다가 1920년 10월 2일 세상을 떠났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는 음악박사의 칭호를 수여했고 프러시아는 훈공장을 주었으며 프랑스는 프랑스 아카데미의 객원으로 추천했다.

그는 1912년 미국인 2중주 피아니스트 로즈 수트로와 오틸리 수트로 자매를 위해 두 대의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a♭단조(Op.88a)를 썼으나 이들은 원래 판본을 연주하지 못하였으며 자신들이 바꾼 두 판본을 두 번 연주한 적이 있다. 그 악보는 1917년에 사라졌다가 1970년 오틸리 수트로가 죽은 직후 발견되었다.

 

<작 품> - 브루흐는 독일 낭만주의 음악의 전통에 따라 보수적으로 작곡하였으며 악풍은 프란츠 리스트나 리하르트 바그너의 "새로운 음악"과는 다른 요하네스 브람스 쪽의 낭만주의에 속한다.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 g단조 Op.26 (1866년 작)은 매우 인기 있는 낭만주의 작품이다. 그는 이 곡에서 펠릭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의 여러 기법을 이용했다. 가령 악장 간에 서로 연결되거나 곡 시작과 함께 관례적으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며 이전 협주곡의 형태를 따랐다. 여러 비평가들은 독자적인 멜로디 전개가 낭만주의 전통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평하였다. 다른 작품으로는 유명한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스코틀랜드 환상곡(Op.46, 1880년)과 히브리의 옛 성가에서 따온 콜 니드라이 Op.47 (부제: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히브리 멜로디의 아다지오)가 있다. 이 작품이 성공하면서 많은 이들이 브루흐 자신을 유대인 출신으로 추측하게 되었지만 관련증거는 없다. 나치 시대에는 그가 유대인일지도 모른다는 이유로 그의 음악은 연주곡목에 들어가지 못했으며 독일어권 국가에서 그의 음악은 완전히 묻혀버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비올라, 클라리넷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Op.88, 1911년), 제1번에 가려 별로 연주되지 않는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1877년, d단조 Op.44. 브루흐 자신은 유명한 1번보다 높이 평가했다고 함), 바이올린 협주곡 제3번(1891년, d단조 Op.58) 등이 있다. 또 3편의 교향곡은 구조나 형식면에서 독창성은 없지만 확고한 낭만주의 전통을 기반으로 그의 뛰어난 멜로디 재능을 보여준다. 그는 여러 실내악 작품을 썼는데 Op. 83(피아노, 클라리넷과 비올라를 위한 8작품, 1908˜09년)과 현악 8중주(Streichoktett.1920년. 작품번호 없음. B 장조)가 있다.

 

<콜 니드라이 소개> - 독일의 작곡가 브루흐(Max Bruch 1838-1920)는 유태교 교당에서 속죄의 날 저녁에 부르던 성가 중 하나인 '콜 니드레'를 ‘히브리 선율에 의한 첼로와 관현악을 위한 아다지오(작품 47)로 재창하였다. Kol Nidrei’는 본래 ‘모든 서약들(All Vows)’이란 뜻으로 이를 통하여 자신들이 실행하지 못한 신에 대한 맹세를 없었던 것으로 해주고 모든 율법의 위배도 용서해 주기를 바랐다.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출발, 즉 거듭남을 다짐하는 것이다. 브루흐는 유대인이 아니었으나 여러 나라의 전래 음악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있던 터라 이 곡을 작곡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 가족들은 유대인으로 의심받아 나치에 의해 많은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길이가 비교적 짧고 멜로디도 단순하지만 깊은 감흥을 남기는 것은 아련한 첼로 선율에 얹힌 동양적인 애수와 종교적인 느낌이 서정성을 더해 풍부하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고대 헤브라이의 전통적인 가락을 바탕으로 해서 만들었다. 원곡은 첼로와 관현악용으로 되어 있다. 장중하고 경건한 동양풍의 향기에 찬 곡이다. 「콜 니드라이」는 ‘신의 날’이라고 번역할 수 있으며 유태교의 예배용 찬가로써 속죄의 날에 불려진다. 콜 니드라이의 원명은 ' 첼로, 오케스트라와 하프를 위한 Adagio작품 47 ' 이다. 한국에서는 '신의 날' 로 불린다. 그러나 '콜 니드라이'란 원래 유태인의 '욤 키퍼'가 시작되는 저녁에 암송하는 기도문을 지칭하고 이 곡의 두 주제(theme)는 유태 민족의 오래된 민요 멜로디이다.

 

<에필로그> -> 자클린 뒤프레(사진)

 

사람이 살다보면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가슴에 스며드는 슬픔, 알 수 없는 허전함이 밀려올 때 등등... 이럴 때 이곡을 들어보길 권장한다. 특히 주위의 눈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울고 싶을 때는 재클린 뒤프레의 연주를 감상해 보면 더욱 진한 감동이 밀려 올 수 있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였던 바렌보임과 녹음한 음반이 있는데(자클린 뒤프레의 삶 검색) 슬픔에 저절로 차올라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빛나고 빛나던 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 최고의 첼리스트이자 스승인 로스트로포비치는 뒤프레의 재능에 감동을 받은 나머지 “내가 이룬 업적과 동등한… 아니 그 이상을 해낼 수 있는 젊은 세대의 유일한 첼리스트”라며 치켜세우기도 했는데 정말 그녀는 최고였다. 재능과 미모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바렌보임과 결혼 생활이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그러나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다발성 경화증이란 병을 얻게 되어 연주자로써의 생명은 끝나게 되었고 더군다나 남편 바렌보임은 다른 여자와 불륜을 맺으며 그녀의 곁을 떠났다. 가장 슬펐던 대목은 그녀가 진단받은 날 그녀 친구에게 했던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동안 연주하다가 활을 놓쳤던 건 내가 실수한 게 아니라 아파서 그런 거라는 걸 남편한테 말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 자클린 뒤프레와 바렌보임(사진)

지휘자 바렌보임은 피아니스트와 결혼하여 현재 활동 중에 있다. ‘콜 니드라이’를 들었으면 이어서 자클린 뒤프레가 연주하는‘자클린의 눈물’이라는 곡도 들어보길 추천한다. 그녀의 삶을 알아야 그녀의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질 것이라 생각해 보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음악을 듣고 있는데 왠지 모를 눈물에 가슴이 시리다.<참고자료 : 위키백과/ 클래식 명곡해설/ 네이버 백과사전〉등

 

 





[기사입력일 : 2015-07-1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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