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5-10-15 13:13]
<작곡가 이야기-시벨리우스. Jean Sibelius >
단 하나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Op.47 을 중점으로.


ㆍ국 적 : 핀란드  ㆍ경력사항 : 헬싱키음악원 작곡과 교수(1892) ㆍ학력사항 : 헬싱키 음악원 / 헬싱키    대학교 법학(1885) ㆍ출 생(1865년 12월 8일) - 사 망(1957년 9월 20일)

【주요작품】- ㆍ교향곡 제1번 e단조 Op.39 ㆍ교향곡 제2번 D장조 Op.43 ㆍ교향곡 제4번 a단조 Op.63

ㆍ교향곡 제5번 E♭장조 Op.82 ㆍ교향곡 제6번 d단조 Op.104 ㆍ교향곡 제7번 C장조 Op.105 ㆍ교향시 「전설」 Op.9 ㆍ교향시 「투오넬라의 백조」 Op.22, No.3 ㆍ「발스 트리스테」(가극 「쿠올레마」 중에서) Op.44 ㆍ교향시 「핀란디아」 Op.26 ㆍ교향시 「타피올라」 Op.112 ㆍ「카렐리아 모음곡」 Op.1

ㆍ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Op.47

<시벨리우스의 삶> - 1865년 12월 8일에 핀란드의 헤미린나에서 태어났다. 9세 때 피아노의 기초교육을 받았고 15세 때부터 군악대장에게 바이올린 주법을 배우기 시작하여 25세까지 계속했다. 그리고 독학으로 작곡법을 연구하는 한편, 헬싱키 대학에 들어가 법률을 배우는 동시에 헬싱키 음악원에도 입학했다. 2년 후에 장학금을 얻어 베를린에 가서 베커에게 사사하여 대위법을 전공했으며 훅스에게 작곡법과 기악법을 배웠다. 다시 빈으로 옮겨 골드마르크의 문하생이 되기도 했다. 1892년에 학업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가서 그의 모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애국심의 결정(結晶)이라고도 할만한 「핀란디아」(1899)는 국민찬가로 선정되었으며 핀란드 정부는 그 공을 기려서 평생 동안 연금을 주었다. 7개의 교향곡 외에, 몇 개의 교향시 · 기악곡 · 가곡 등 작품의 수는 적지 않으며 어느 것이나 독특한 향기와 맛을 갖고 있다. 1957년 9월 20일 92세의 고령으로 세계의 사람들로부터 아낌을 받으며 세상을 떠났다. 핀란드는 국장(國葬)의 예의를 다해 이 위대한 대음악가를 장송했다.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라단조’ 작품 47번>

@작품 소개 : 시벨리우스의 유일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1904년 그가 39세 때 발표한 작품이다.

Violin Concerto in D minor, Op.47, Jean Sibelius 1865.12.8∼1957.9.20,

1st Mov. Allegro moderato (16:16), 2nd Mov. Adagio di molto (8:08)

3rd Mov. Allegro, ma non tanto (7:54) ->대략 30분 정도 연주소요

제 1악장 Allegro moderato 2분의 2박자 D단조 자유스러운 소나타 형식. 독주의 바이올린은 북 유럽적이며 애수에 찬 제 1테마가 연주된다. 그리고 제 2테마는 파곳의 연주로 나타난다. 코다에서는 D단조로 전진하다가 끝나게 된다. 제 2악장 Adagio di molto 4분의 4박자 B플렛 장조 세도막 형식. 제 3악장 Allegro ma non troppo D장조 4분의 3박자.

이 악장은 교향곡에서만 맛볼 수 있는 론도 형식의 폴로네이즈 풍의 곡이다. 독주 바이올린으로 나타나는 제 1테마와 현악기의 유니즌으로 연주되는 제 2테마가 나타나 재현부를 지나고 코다로 들어간 후 끝난다.

@작품 배경 및 악곡구성

핀란드 자연이 낳은 음울한 선율이다. 핀란드의 자연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이 작품의 독특한 환상적 선율과 풍성한 관현악의 울림에 있을 것이다. 시벨리우스의 음악은 핀란드의 자연에서 탄생한 것이고 그만큼 민족주의 색채가 강하다. 애국적 교향시 「핀란디아」로 잘 알려진 잔 시벨리우스의 주요업적은 7개의 교향곡과 5개의 교향시로 집약된다. 「근대 낭만파음악의 아버지」란 칭호를 듣는 그이지만 개인적 감성을 아기자기하게 묘사한 소품과는 거리가 멀다. 협주곡도 알려진 것은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한 곡뿐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20세기의 훌륭한 바이올린 협주곡들인 바르토크, 스트라빈스키 등의 작품보다 훨씬 인기가 있다. 물론 1904년 2월 8일 헬싱키에서 초연되었던 이 협주곡 처음의 악보는 다소 실패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스스로의 작품 평가에 무척 엄격하였던 시벨리우스도 이 곡에 대해서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였으며 다시 수정을 하여 개정된 작품을 1905년에 새로이 선보였다. 그런데 1903년 처음 작곡된 것돠 1905년에 개정한 것은 모두 버머스터(Willy Burmester)를 위하여 작곡된 작품이었다. 그렇지만 시벨리우스는 이 바이올린 협주곡이 두번이나 무시되는 것에 몹시 불쾌해 있었으며 더욱 훌륭한 연주를 위하여 이 곡은 또 다른 음악가에게 헌정되어졌다. 한편 시벨리우스의 전기작가인 타바시스테르나(Erik Tavaststjerna)는 이 같은 시벨리우스의 행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시벨리우스는 버머스터를 위해서나 또 다른 어떤 바이올리니스트를 위해서 이 협주곡을 작곡한 것이 아니며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하여 이 협주곡을 작곡하였다. 오히려 그는 스스로가 일종의 위대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되는 것과 같은 꿈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한 그는 멘델스존이나 브람스와는 달리 바이올린 독주의 전문적인 테크닉 문제에 대해서도 다른 바이올리니스트의 충고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따라서 자연스러운 그의 상상력 속에서 그는 바잉로린 협주곡의 독주자로서 자신을 염두에 두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이 협주곡의 노스탤지어와 강한 낭만적인 성격에 대한 훌륭한 설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는 일찍부터 바이올리니스트로서도 재능을 나타내 보였던 시벨리우스가 바이올린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만든 이 협주곡에 대한 훌륭한 해석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에 전해지는 이 협주곡의 개정판은 1905년 10울 19일 베를린에서 당시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하릴(Carl Halir, 1859~ 1909)의 바이올린 독주와 작곡가로서도 유명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휘에 의해 처음으로 세상에 선보여졌으며 이후 이 곡은 시벨리우스의 대표작일 뿐 아니라 근대 바이올린 협주곡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참고자료:두산백과,앨범 내지에서 발췌】

처음에는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강의 연주로 들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1악장 2악장 보다는 3악장이 귀에 확 들어온다. 굉장히 역동적으로 시작을 하는데, 한번 들으면 기억이 남을만한 매력적인 멜로디이다. 시벨리우스 곡이 어렵다면 바이올린 협주곡 3악장을 클라라 주미강이나 장영주의 연주를 꼭 한번 들어보길 추천한다!^^

 






[기사입력일 : 2015-10-15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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