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5-10-15 13:53]
홍광일의 오카리나 친구와 행복한 기핸
사라예보에 울려 퍼진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1992년 5월, 유고슬라비아의 수도인 사라예보는 바깥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채 수개월 동안 세르비아계 민병대들의 위협으로 공포에 떨고 있었다. 도시를 포위하고 인종 청소를 목표로 하는 세르비아계 저격수들 때문에 시민들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서 몸을 숨기며 식량을 구하러 다녀야 했다. 생명의 위협 속에서도 극한의 굶주림은 한 빵가게에서 빵을 만들어 판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즉시 사람들을 모여들게 했고 많은 사람들은 빵을 사기 위해 그 가게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인종과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촉발된 전쟁에서는 여지없는 타격 대상이 되었고 시민들 머리 위로 포탄이 날아왔다. 5월 27일, 그 자리에서 22명이 목숨을 잃었고 100여 명이 중상을 입었다. 전쟁의 참상은 사라예보 시민들에게 공포와 굶주림 그리고 절망감을 안겨 주었고 더 이상 그 곳에는 희망이 없었다.

그런데 참사가 있었던 그 다음날, 검은 연주복 차림에 첼로 가방을 메고 연주용 의자를 들고서 폐허 속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는 참사가 일어난 그 자리에서 의자를 놓고 첼로를 꺼내어 연주를 하기 시작했고 참사로 죽은 영혼을 달래는 듯한, 느리고 장엄하면서도 애절한 곡을 연주하기 시작하였고 건물의 잔해와 잿더미 속에 울려 퍼지는 첼로의 선율은 생명 부지를 위해 숨어있는 시민들에게 큰 위로의 선물이 되었다. 그 남자는 희생자 22명을 위해 22일간 그 곳에 나와 첼로를 연주했고 전쟁의 폐허 속에 위로와 희망과 안식을 준 이 사건은 전 세계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었다. 22일간 희생자를 추모하며 첼로를 연주했던 그 남자는 바로 베드란 스마일로비치(Vedran Smailović, 1958~ )라는 첼리스트였고 그는 전쟁 전까지 사라예보 필하모닉의 첼로 주자였다. 전쟁으로 인하여 음악활동을 못하고 있던 스마일로비치는 사라예보의 다른 시민들처럼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22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빵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 있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참사 소식을 들은 그는 전쟁의 비극과 참담한 상황 속에서 평화에 대한 희망을 생각하게 되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음악이 진정한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가 될 것으로 확신하였던 것이다. 이 때 그가 연주했던 곡이 바로 “알비노니의 아다지오”이다. 극한의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돈이나 선물이나 위로의 말보다도 더 위안이 되는 것은 함께 울며 슬퍼하는 것일 것이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가 가진 느리고 장엄한 그리고 애절한 선율은 슬픔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함께 슬퍼하고 애통해 한다는 의미가 되어 진정한 위로가 되었을 것이다.

- 알비노니의 작품이 아닌 “알비노니 아다지오”-

토마소 알비노니(Tomaso Albinoni:1671-1751)는 18세기 바로크 시대에 비발디와 더불어 베네치아 악파를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비발디보다 7년 연상인 알비노니는 평생 50여 곡의 오페라와 40여 곡의 칸타타, 64곡의 협주곡과 8곡의 신포니아, 97곡의 소나타 등을 작곡했다. 알비노니는 당대엔 오페라 작곡가로 이름을 떨쳤으나 오늘날엔 오보에 협주곡 d단조 등 기악곡 작곡가로 더욱 잘 알려지고 있다. 비교적 활발한 음악활동과 많은 작품을 남겼음에도 그는 딜레탕트(dilettante, 예술이나 학문을 취미삼아 하는 사람) 작곡가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역사상 유명한 작곡가등에 비하여 덜 알려진 인물이었는데 그의 이름이 대중에게 알려진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아다지오 g단조’ 덕분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는 알비노니의 곡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음악학자였던 레모 자초토(Remo Giazotto, 1910-1998))는 알비노니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연구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1945년 여름, 연합군의 폭격으로 폐허가 된 독일 드레스덴 시의 도서관을 방문하여 자료를 찾게 되는데 뒤죽박죽이 된 서적들을 뒤지던 중 자초토는 단 몇 마디의 선율이 적힌 쪽지를 발견하게 되었고 바로 그 종이에 선율이 알비노니의 작곡 스타일과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서 이를 기초로 곡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완성된 “아다지오 g단조”는 알비노니 당시의 음악 스타일과는 다른 후기 낭만 시대의 기법으로 작곡되었고 훗날 이 곡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자초토는 원래 발견한 쪽지에는 통주저음이 약간 그려져 있는 정도였고 이 곡은 자신의 작곡하였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마 알비노니가 이 곡을 듣는다고 해도 본인의 곡이라고 알려져 있다는 말을 듣는다면 깜짝 놀랄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자초토가 발견한 알비노니의 쪽지로 시작된 이 곡의 탄생 배경 때문인지 지금까지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로 알려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알비노니가 작곡한 곡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전 세계에서 가장 슬픈 아다지오로 알려진 바버의“현을 위한 아다지오”와 함께 쌍벽을 이루는 “알비노니의 아다지오 g단조”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을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곡이며 너무나 슬픈 곡이기에 슬픈 마음에 격한 공감을 줄 수 있는 명곡이라 하겠다.

【배워봅시다】- 아다지오(오카리나 매니아 p19)

1. 느리고 장엄한 분위기를 이어가기 위해서 16분 음표를 연주할 때 급작스런 분위기나 너무 가볍게 연주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 두 번째 단에 부점이 있는 리듬도 곡의 흐름에 벗어나지 않게 무겁고 부드럽게 연주하도록 합니다.

3. 7, 10마디의 도#의 음정과 이어 등장하는 높은음의 음정에 주의하여 연주합니다.

4. 13마디 이후 셋잇단음표는 음표가 모이게 연주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겠습니다.

5. 22마디는 양손 엄지손가락을 사용해 연주하게 되는데 악기의 지탱과 함께 진행해야 하므로 충분한 반복 연습을 통하여 숙달하도록 합니다.

 

 







[기사입력일 : 2015-10-1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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