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6-03-25 13:10]
음악가 이야기 - 타우버(Richard Tauber)



 타우버(Richard Tauber)

ㆍ출 생 :1891년 5월 16일 ㆍ사 망 :1948월 1월 8일 ㆍ국 적 : 영국  ㆍ출생지: 오스트리아 린츠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 테너가수로 오스트리아 린츠 출생이다. 프랑크푸르트 음악원에서 수학하였고 1913년 모차르트의 《마적(魔笛)》에서 타미노役으로 데뷔하였다. 그 후 드레스덴·베를린 등의 궁정오페라와 계약을 맺고 빈·뮌헨 등지에서도 활약하였다. 모차르트 가수로 알려졌지만 나중에는 오페레타에도 흥미를 가졌고 레하르의 작품에서도 장기를 보였다.

<타우버의 삶>1903년, 아버지는 비스바덴(Wiesbaden)극장에 정착하게 되었고 타우버는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고등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타우버는 다른 학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유독 음악에 대한 재능을 보였다. 타우버는 아버지의 극장에서 보이소프라노로 출연하였으나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보이소프라노 소리를 더 이상 낼 수 없자 테너가 되려는 야심을 갖게 된다. 더구나 당시 그 극장에는 유명한 헬덴테너 하인리히 헨젤(Heinrich Hensel)이 활동하고 있었는데 타우버는 우상이었던 헨젤의 오페라 역할을 거의 다 흉내 낼 정도였다. 아들의 음악적 호기심 및 재능을 발견한 아버지는 타우버를 비스바덴 상임지휘자인 슐라르 교수와 비엔나의 성악교수인 데무트에게 보내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킬 작정이었다. 그러나 슐라르 교수와 데무트 교수는 타우버를 몇 번 테스트하고 나더니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타우버는 음악을 계속하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결국 아버지는 타우버를 프랑크푸르트로 보내 피아노, 작곡, 지휘공부를 시켰다. 그러던 중 우연찮은 행운이 그를 향하여 미소를 보냈다. 아버지가 다른 일로 바쁘게 되자 타우버를 프라이부르크에 가서 잠시 있도록 했고 그곳에 가있는 동안 바이네스(Beines)교수를 만난 것이다. 바이네스 교수는 유명한 성악가들을 많이 길러낸 인물이었다. 타우버의 노래를 들어본 바이네스 교수는 소리만 크게 지르는 그에게 피아노 반주에 맞추어 불러볼 것을 권유했다. 그리고는 타우버에게서 모차르트의 테너에 적합한 천부적인 재능을 발견하게 되었으며 1년 후에는 콘서트를 가질 정도로 놀라운 성장을 거둔다. 그렇지만 그의 아버지는 1년 공부한 것을 가지고 독창회를 가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더욱 공부에 매진할 것을 주문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헴니츠(Chemnitz)에 있는 두 개의 극장 책임자로 임명된다. 1913년, 타우버는 아버지가 책임자로 있는 헴니츠 극장에서 타미노(모차르트의 마적)를 맡아 처음으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하였고 며칠 후에는 ‘마탄의 사수’에서 막스를 맡아 열연하였다. ‘마탄의 사수’에는 드레스덴 오페라의 제바흐(Seebach) 남작이 참석하였다. 제바흐 남작은 그 자리에서 타우버에게 5년 계약을 제안하였다. 드레스덴에서 타우버는 SOS 테너로 활약했는데 기라성 같은 드레스덴의 테너 주역들 중에 사정으로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면 대역으로 출연하는 역할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밤을 새워가며 스코어를 암기해야 했다. 브레스라우에서는 파우스트를 48시간 통보를 받고 출연하였으며 베를린에서는 막이 오르기 단 한 시간 전에 피아노 연습만 하고 슈트라우스의 아리아드네에서 바커스를 맡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케이스는 투란도트의 독일 초연에서 주역인 칼라프 왕자 역할을 맡은 것이었다.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투란도트를 단 3일전에 주역 통보를 받고 밤새 연습하여 무대에 섰다. 놀라운 재능과 체력이었다. 칼라프를 맡기로 되어 있는 테너 쿠르트 타우허(Curt Taucher)가 갑자기 병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드레스덴에 정착해 있는 동안 타우버는 60개 이상의 역할을 소화해 냈다. 어느 누구도 그렇게 빠르게 발전한 경우는 없었다. 드레스덴에서 그는 테너 티노 파티에라(Tino Pattiera)와 절친한 친구로 지냈다. 파티에라가 독창회나 콘서트를 가지면 타우버가 피아노 반주를 맡아해 주었다. 드레스덴에서 만난 또 하나의 젊은 성악가는 엘리자베트 레트버그였다. 1922년 그는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제안을 받아들여 비엔나로 가게 되었고 이곳에서 폭스오퍼와 빈극장(Theater an der Wien)의 지휘를 맡는 등 오페레타 활동도 활발하게 펼쳤다. 1924년 그가 빈극장에서 지휘를 맡았을 때 함부르크 출신의 소프라노 카를로타 반콘티(Carlotta Vanconti)를 만났다. 그때 카를로타는 마리차 백작부인 역할을 맡아 비엔나에 데뷔를 하였고 타우버가 그 오페레타의 지휘를 맡았던 것이다. 얼마 후 카를로타는 이탈리아 남편과 이혼하고 타우버와 결혼하였다. 두 사람은 기회 있을 때마다 오페레타를 함께 공연하였다. 테너와 소프라노라는 이상적인 결합이었지만 공통의 관심사가 다르고 음악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 4년 뒤에는 결국 이혼하고 만다. 카를로타는 뮤지컬 쪽에 관심을 가졌지만 타우버는 전통적 모차르트에 근본을 두고 우수한 오페레타에만 간혹 부업으로 출연하자는 주장이었다. 타우버는 1920년대 중반 테너로서의 절정에 이르렀으며 이후 10여년 이상 정상 가도를 달렸다.

< 돈 조반니 & 웃음의 나라 >1924년 3월 5일, 비엔나에서의 돈 조반니 공연은 그의 전성기를 잘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타우버는 돈 오타비오를 맡았다. 돈 조반니에서 돈 오타비오는 다른 주역들의 그늘에 가려 별로 빛을 보지 못하는 것이 통상이었다. 어떤 경우에는 레포렐로(하인)만도 못한 박대를 받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이날 공연에서 타우버는 주인공인 돈 조반니를 훨씬 능가하는 대단한 박수를 받았다. ‘도이치 알게마이너 자이퉁’지는 ‘타우버는 두 곡의 아리아를 눈부시게 불렀다. G장조 아리아의 마지막 파트에서 어쩌면 그렇게 칸틸레나(cantilena)를 불렀는지 놀랄 뿐이다. B플랫 장조의 아리아에서 콜로라투라 테너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전무후무한 연주였다’고 찬사를 보냈다. 1935년 그는 영국의 신예스타 다이아나 네이피어(Diana Napier)를 만났고 이듬해 결혼하였다.

1938년 조국인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합병되자 타우버 가족은 사실상 국적을 잃은 상태였다. 그는 영국에 귀화를 요청하였고 1940년 모든 절차가 끝나자 영국으로 귀화하였다. 미국에서 상당히 좋은 조건으로 초청하며 미국시민이 될 것을 요청했지만 자신의 귀화를 받아준 영국에 남아있기로 결심하고 응하지 않았다. 물론 전쟁이 끝나자 타우버는 미국을 방문하여 레하르의 ‘웃음의 나라’(Land of Smiles)의 영어 초연에 출연하는 등 상당한 활동을 하였다.

<인생 후반기의 타우버>남미를 거쳐 런던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지독한 감기로 고생하였고 노래 부르는 것을 쉬도록 권고를 받았다. 타우버는 테너에게 노래를 부르지 말라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같다며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얼마 후 내려진 진단 결과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는데 타우버는 이미 폐암에 걸려있었으며 더군다나 한 쪽 폐는 완전 불치 상태였다. 그러던 차에 비엔나 슈타츠오퍼의 런던 공연이 있게 되었다. 슈타츠오퍼는 오래전의 동료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타우버에게 돈 조반니의 돈 오타비오를 맡아 달라고 간청했다. 당시 타우버의 나이 56세 때였다. 1947년 9월 27일 타우버는 코벤트 가든에서 돈 오타비오를 불렀다. 열광의 소용돌이였다. 그의 아름다운 음성은 여전히 건재하였다. 코벤트 가든에 몰려왔던 관객들은 물론 집에서 라디오로 실황 중계를 들었던 모든 사람들은 타우버의 건강이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알고 있었지만 이날 공연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타우버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으며 처음 오페라 무대에 섰을 때처럼 모차르트로 시작하여 모차르트로 끝을 맺었다. 며칠 후 타우버는 왼쪽 폐의 절제 수술을 받았으나 나머지 폐도 못쓰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인 1948년 1월 8일 막스 타우버는 세상을 떠나고 만다. 음악적으로 매우 유명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름이기에 이번 기회에 꼭 알리고 싶었던 이름이다.






[기사입력일 : 2016-03-25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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