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6-05-23 15:15]
음악가 이야기】- 카롤 시마노프스키(Karol Szymanowski / 1882 - 1937)



<시마노프스키의 삶> 폴란드의 작곡가로 그의 음악은 쇼팽, R.슈트라우스, A.N.스크리아빈 등의 영향을 받은 피아노 작품에서 시작되었으며 프랑스의 인상주의 수법을 도입하고 만년에는 폴란드의 민족성에 뿌리박은 새롭고 독자적인 작풍을 확립했다. 우크라이나 출생으로 어려서부터 피아노와 작곡을 공부하였고 19세 때 바르샤바에서 Z.노스코프스키에게 사사했다. 1906∼1908년, 독일에서 유학한 후 유럽 각지에서 활약하였고 1926년 바르샤바음악원 원장에 취임하였으나 1936년 폐결핵으로 쓰러져 스위스의 로잔에서 요양하다가 이듬해 생을 마감한다. Tymoszówka (현재는 우크라이나지만 당시는 폴란드의 일부)에서 태어난 시마노프스키는 쇼팽 이후 폴란드의 중요한 작곡가 중 한사람이다. 초기작품은 낭만주의 색채가 짙었고 후기로 갈수록 음계나 화성 등에서 현대주의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따라서 그는 후기 낭만주의와 현대음악을 이어주는 과도기적 작곡가라고도 말할 수 있다. 바르샤바, 베를린, 빈, 이태리 시칠리아, 북아프리카 지역 등 여러 지역을 여행하며 작곡한 만큼 그의 음악에도 많은 나라(독일, 러시아, 프랑스, 이태리 등) 작곡가들의 영향이 곳곳에 배어있다. 이런 배경들을 바탕으로 한 그의 음악은 그것으로부터 한 발 더나가 그만의 독특하면서도 신비로운 색채를 지닌 음악을 만들어낸다. 1903년부터 2년간 시마노프스키는 바르샤바 음악원에서 폴란드의 유명한 작곡가 노스코브스키를 사사한다. 그의 작품 활동 초기인 1900∼05년, 이 시기에는 주로 쇼팽과 스크리아빈의 영향을 받아 민족적인 색채와 함께 비교적 작품의 느낌이 아름답고 말 그대로 낭만적인 곡들이 대부분이다.

<음악적 색채> 1906∼10년, 이 시기에는 베를린(1906∼08년)과 바르샤바 등에서 지내며 이전의 아름답고 민족적인 색채에서 더 나아가 다양한 시도들을 하게 되고 슈트라우스 등의 영향과 함께 화성적인 관현악 편성법(오케스트레이션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최초의 관현악곡을 작곡하기도 한다. 시마노프스키는 이와 함께 폴란드의 음악을 보다 부흥시키게 하기 위해 독일에서 만난 작곡가 겸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코챤스키 등 몇 명과 함께 "젊은 폴란드(Moloda Polska)" 를 창설해 활동하는 등 그의 나라 폴란드와 그 음악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한 듯하다. 1911∼1920년, 동양 철학 등에 관심이 많던 시마노프스키는 당시 인상주의 음악기법으로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드뷔시의 영향을 받지만 시마노프스키는 드뷔시와는 또 다른 그만의 독특하면서도 신비한 색채를 가진다. 1921∼34년 그는 그가 공부했던 바르샤바 음악콘서바토리 음악학장이 되었지만(1926∼29년) 다른 선생들과의 갈등,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상 이유로 그만두게 되면서 이후 남부 폴란드에서 요양을 하며 작곡생활을 이어간다. 그는 독자적이면서도 자신만의 더욱 뚜렷한 색깔을 지니게 되고 폴란드의 민요를 바탕으로 한 현대적인 기법 등으로써 그만의 음악세계를 구축한다. 이 후 요양지인 스위스 로잔으로 옮겨 작곡을 계속하나 수년간 앓아오던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1937년 3월 29일)

<그의 작품> 교향곡들과 피아노독주가 협연하는 협주적 교향곡, 두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녹턴과 타란텔라, 로맨틱 소나타, 세곡으로 이루어진 "신화", 발레 "하르나시" 그 밖에도 많은 피아노곡들과 함께 약 20편의 마주르카, 2편의 오페라 "Hagith"와 "King Roger", 합창과 솔리스트를 위한 "Stabat Mater", "Veni Creator", "Litania" 또한 많은 가곡 등이 있는데 그의 가곡들은 시마노프스키의 여동생이었던 소프라노 Stanislawa Szymanowski-Korwin (1918∼39년) 에 의해 자주 불러지기도 했다. 그는 처음 바르샤바에서 노스코프스키 밑에서 공부했으며 다시 모니유슈코에게 배웠다. 1905년 피테르베르크와 함께‘젊은 폴란드(Mołoda Polska)’그룹을 결성하여 바르샤바에서 작품을 발표하였다. 그 멤버들은 베를린으로 갔지만 시마노프스키만은 독일에 남아 바그너와 R.시트라우스, 레거의 작품을 연구하였다. 1907년에 발표한 12개의 리이드에서 그의 양식을 최초로 확립하게 된다. 당시는 학구적인 작곡에 민요의 이용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쇼팽, 스크리아빈, 브라암스, R.시트라우스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이후 그의 작풍은 점차 혁신적으로 개성을 갖게 되었으며 서정성과 다성적이고 기악기법이 현저하게 달라진다. 1912년의 오페라 〈하기트(hagith)〉는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서 이는 1914년 그가 오스트리아를 떠나기까지의 작품 경향인데 스크리아빈의 영향이라 할 수 있다. 그는 많은 가곡과 기악곡, 관현악곡을 작곡했는데 오케스트레이션이 뛰어난 솜씨를 보인다. 1914년 이후 그가 죽을 때까지의 작품에는 또 하나의 변화를 보였는데 예컨대 바이올린 협주곡op.35에서와 같이 테마의 발전이 작품의 주요한 바탕을 이루고 있다. 또는 묘사와 무조적인 수법도 결부되어 있다. 바이올린을 위한 <아레투자의 셈>(La Fontaine ď Arethuse), <나르시스>(Narcisse), <판과 드리아드>(Dryades et Pan), <3곡으로 된 신화>(Mythes)와 피아노 <메토프>(M`ethopes), <무언극>(Mesqes)과 같은 작품에서는 묘사적인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 있다. 한편 형식에 대한 감성도 유지되어 있는데 협주곡과 그 밖의 규모가 큰 작품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 교향곡 같은 데서 볼 수 있다. 그의 오페라 <로제 왕>(Krόl Roger)은 1926년 바르샤바에서 발표하여 정치적인 물의도 일으켰지만 그 후 체코, 이탈리아 제23회 국제 현대음악제에서 발표하기도 하였다(1949년). 민족음악이 지닌 야생적인 아름다움에 공감을 가질 수 있으며 민족적인 가락과 선법, 불규칙한 악센트와 리듬을 작품에 담았다. 1926∼9년까지 바르샤바 주립 음악학교 교장으로 있었으며 1930년 크라쿠프 대학에서 명예 철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다. 그밖에 주요 작품으로는 교향곡 No.2.3번, <피아노와 관현악을 위한 협주적 교향곡>, 바이올린 협주곡 No . 1. 2 등이 지금도 연주된다. 주요작품으로 오페라《하기트 Hagith》(1913) 《로제왕 Le Roi Roger》(1924), 발레곡 《하르나시 Harnasie》(1926), 오라토리오《스타바트 마테르 Stabat Mater》 등이 있다. 카롤 시마노프스키란 작곡가를 처음 알게 된지는 얼마 안 되었다. 페이스 북에“음대입시닷컴”에서 제공한 연세대학교 수시입시 곡을 보다가 우연히 알게 된 것이다. 2017년도 연세대학교 수시1차 입시지정곡이란다. 우∼와! 연세대 피아노과 학생들 실력이 정말 대단하구나! 피아노 에튀드인데 엄청난 테크닉과 기교가 필요한 현대곡이다. 엄청난 악보영상 아래 댓글들이 많이 달려있는데 이구동성으로 엄청난 곡이라는 반응이다. 사실 필자는 현대 곡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다. 선율이 아름다운 카푸스킨의 에튀드나 재즈틱한 베넷의 작품들은 좋아하지만… 카롤 시마노프스키의 곡은 어렵다. 물론 그의 곡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일단 피아노 에튀드는 난해한 편이라 즐겨 들을만한 그의 다른 곡들을 알아보려고 한다. 오페라 로제 왕과 오라토리오, 발레곡과 바이올린 협주곡이 유명하던데 제대로 파헤쳐 보며 즐기려 한다. 다음호에서는 그의 작품세계를 만나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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