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6-10-17 16:19]
음악가 이야기 -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바이올린 소나타3번”을 중점으로”

·출생과 사망 : 1810년 06월 08일 ~ 1856년 07월 29일

·국 적 : 독일  ·주요작품 - 교향곡 제1번 B플랫장조 봄 Op.38 교향곡 제3번 E플랫장조 라인, 교향곡 제4번 d단조 Op.120, 피아노 협주곡 a단조,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

첼로 협주곡 a단조 Op.129,피아노 5중주곡 E플랫장조(실내악곡) Op.44

현악4중주곡 제3번 A장조 Op.41의 3,피아노 3중주곡 제1번 d단조 Op.63

나비들 Op.2,사육제 Op.9,환상 소곡집 Op.12,교향적 연습곡 Op.13,어린이의 정경

크라이슐레리아나 Op.16,환상곡 C장조 Op.17,여인의 사랑과 생애,시인의 사랑 Op.48,미르테의 꽃 Op.25,두 사람의 척탄병 外

【슈만의 삶 】작센 지방의 츠비카우(Zwickau)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교양이 높은 서적상이었으며 어머니는 아마추어이면서도 노래를 잘 불렀다. 일찍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보였는데 7세 때 작곡을 시작하여 10세가 지날 무렵에는 이미 오르간 곡을 썼다고 한다. 츠비카우 교회의 오르가니스트에게 피아노를 배우는 한편, 책을 탐독하여 스콧과 바이런에 경도되었고 특히 장 파울(Jean Paul)에게는 평생 동안 경의를 품고 있었다. 또 슈베르트(오스트리아)의 리트를 접하고 시와 음악의 완전한 융합에 커다란 감명을 받은 것도 이 무렵이었다. 1826년(16세)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희망에 따라 법률을 배우기 위해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꿈을 포기하지 못하고 1830년(20세) 마침내 어머니의 승낙 하에 음악의 길로 접어든다. 작곡을 도른(Heinrich Dom, 1804~1892)에게, 피아노는 비크(Friedrich Wieck, 1785~1873)에게 배우기 시작했으나 너무 무리하게 연습한 결과, 오른쪽 약지손가락을 다쳐 피아니스트로서의 장래를 보장받을 수 없었다. 이후에는 주로 창작에 전력을 다했는데 그 대상이 피아노곡에 쏠리게 된 것도 부득이한 일이었다. 1836년(26세) 일류 피아니스트였던 비크의 딸 클라라(Clara)를 뜨겁게 사랑했기 때문에 정식으로 청혼한 적이 있으나 스승인 비크는 슈만의 불안정한 생활을 이유로 거절했다. 게다가 비크는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기 위해 딸을 데리고 연주여행을 떠나버리는 등 끝까지 그들의 결합을 반대하였다. 그렇지만 재판을 벌인 결과 두 사람의 결혼은 마침내 성사되었는데 과연 낭만파의 투장(鬪將) 슈만다운 이야기이다. 창작 활동은 그동안에도 쉼 없이 지속되었으며 클라라의 도움으로 음악가로서의 지위는 착실하게 쌓아올려져 갔다. 1840년 염원했던 결혼이 성사된 뒤부터는 다시 창작 영역을 넓혀갔는데 특히 이 해는「여인의 사랑과 생애」,「시인의 사랑」등 성악곡 가곡집을 포함하여 138곡에 달하는 리트가 작곡된‘가곡의 해’였다. 모든 것이 클라라를 얻은 기쁨과 사랑을 노래한 작품들이다. 이듬해부터는 또다시 규모가 큰 기악곡 창작을 시작「교향곡 제1번」을 필두로 피아노 5중주곡과 4중주곡 등이 작곡되어 갔다. 1843년 멘델스존(독일)은 그가 창설한 라이프치히 음악원의 교수로서 슈만을 초빙했다. 두 사람의 교우 관계는 이미 오래되었으나 그 예술적인 성향차이 때문에 멘델스존은 슈만의 타고난 재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였고 슈만 또한 교직에 적응하지 못해 1년 만에 그만두었다. 그 후 드레스덴으로 옮겨 개인교수나 합창단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창작에 몰두했다. 드레스덴 시대의 작품으로는 「교향곡 제2번」(1846)과 「피아노 3중주곡 제2번」(1847) 등이 포함된다. 1850년(40세)에는 뒤셀도르프 시의 지휘자로 초빙되어 3년간 재직하게 되는데 예전부터 감지됐던 정신병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 때문에 지휘자로서의 활동도 불가능해지고 모처럼의 지위도 내려놓게 된다. 다만, 클라라와의 연주여행은 그 후에도 종종하였다. 1853년 무명의 청년 음악가 브람스(독일)가 슈만을 처음으로 찾아갔다. 그는 후배의 타고난 재질을 꿰뚫어보고 따뜻이 대접했으며『음악신보』에〈새로운 길〉이라는 평론을 싣고 세상에 널리 소개했다. 그 이후 슈만(독일)과 브람스(독일)의 친교는 오래도록 계속된다. 그러나 소강상태였던 정신병이 재발, 환상과 환청에 시달렸는데 갑자기 방을 뛰쳐나가 라인강에 몸을 던지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다행히 구조되어 본 근교의 정신 병원에 입원했으나 병상은 악화되어 2년 후인 1856년 7월 29일 46세의 생애로 마감했다.

슈만이 1853년 라인강에 투신하고 정신병원에 들어가기 직전에 작곡한 음악이 조금 생소한 바이올린 협주곡과 바이올린 소나타 3번이다. 이 두곡이 생소하게 된 것은 슈만의 부인 클라라와 제자 브람스가 슈만의 명예를 위한답시고 슈만의 광기가 나타나는 이 곡들을 출판목록에서 빼 버렸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브람스가 예고도 없이 슈만의 집을 찾아간 것이 1853년 9월의 일이었는데 다섯 달 뒤 제 발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슈만을 바라보는 브람스의 심경은 어땠을까? 1853년 상반기에 슈만은 거의 작곡을 하지 못했다. 그해 여름부터 가까스로 작곡에 몰두해 마지막 작품들을 써내려간다.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환상곡, 피아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서주와 알레그로, 바이올린 협주곡, 바이올린 소나타 3번, 피아노 모음곡 <아침의 노래>, 유령 변주곡 등. 이 시절 슈만의 작곡 능력은 급격히 떨어져만 간다. 브람스가 악보를 통해 알고 있던 거장의 실체는 점점 사라지고 있었다. 마지막 작품들은 제대로 출판되지도 않았고 많이 연주되지도 못했다. 작곡가의 사후 유고를 정리해야 했던 클라라 슈만과 브람스는 진심으로 고민했을 것이다. 클라라 슈만이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5개의 로망스>라는 유작을 폐기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분명한 것은 53년 가을 슈만이 쓴 원고들은 상당한 편집을 거치지 않고서는 연주가 불가능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20세기의 편집자들도 권위있는 정본 같은 것을 만들어내지는 못했고 마지막 작품들에 대해 이것이 진정한 슈만의 작품인가? 라는 물음에 대답하기는 영영 어렵게 되었다. 아무리 생각해보고 생각해봐도 클라라가 한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작품이 이렇게나 아름답고 좋은 곡인데… 작곡을 요청했던 요아힘이 이 곡 연주가 불가능한 곡이라고 불평한 게 원인이지 않을까? 라는 이야기도 있다. 어찌되었든 이런 명곡을 다시 만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지 않을 수 없다.【참고: 최신명곡해설 & 클래식명곡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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