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7-01-05 13:31]
【독자칼럼】 음악가 이야기 : 외젠느 이자이(Eugene Ysaye)



수많은 바이올린 연주자 중 최고라고 격찬한 작곡가 클라이슬러

 

·국 적 : 벨기에 · 1858년 7월 16일~ 1931년 5월 12일, ·바이올리니스트 겸 지휘자

 

【이자이의 삶】리에주 음악원 주임교수였던 데지레 헤인베르크는 어느 날, 자신의 클래스의 한 학생부모를 불러 “이 소년에게 바이올리니스트 교육을 계속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이자 무의미하다.”라며 중도에 포기할 것을 종용하였는데 그가 바로 최고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였던 이자이다. 1858년 벨기에 리에주(Liège)에서 태어난 이자이는 5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7살 때 리에주 음악원에 들어가 공부했으나 학교에서 가르치는 내용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해 중도에 포기하고 아버지가 지휘자로 있던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거나 거리에서 연주하는 등 이미 연주자로써의 홀로서기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날도 거리에서 연주하고 있는 이자이를 유심히 살펴보던 바이올린의 대가 뷔에탕이 크게 감명을 받았고 브뤼셀 음악원 입학을 추천한다. 1873년 브뤼셀 음악원에 입학, 비에니야프스키 문하에서 수련하는 동시에 뷔에탕의 지도도 받게 된다. 졸업 후에는 뷔에탕의 후원으로 본격적인 연주가의 길을 걷게 된다. 이러한 인연으로 이자이와 뷔에탕의 관계는 평생의 제자와 스승으로 연결되었고 음악적으로는 두 스승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이른바<프랑코-벨기에 악파(Franco-Belgian school)>전통의 후계자가 될 수 있었다. 음악원을 졸업한 후 한동안은<벤자멩 빌스(Benjamin Bilse) 비어홀 오케스트라에서 수석 연주자로 일하면서 연주경험을 쌓게 되는데 이 무렵 러시아 피아니스트<안톤 루빈스타인>을 만나 그와 연주여행에 동반한 일도 있었다. 27살 때는 파리의<콩세르 콜론>에서 솔로이스트로 초청을 받아 연주자로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고 이듬해엔 브뤼셀 음악원의 교수로 초빙되어 가르치는 일에도 힘썼다. 1894년, 미국 연주회에서 이름을 얻기 시작하면서 무대를 넓혀 나갔고 자신의 이름을 내 건 현악4중주단을 조직하여 실내악에도 진출했다. 4중주단은 드뷔시가 이자이에게 헌정한 현악4중주곡을 초연하기도 했다. 이러한 폭넓은 활동의 힘으로 미국 신시내티 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되면서 지휘자로서도 활동하는 등 연주영역의 외연을 확장하는데도 성공했다. 한때 뉴욕 필하모닉에서 그를 감독으로 초빙했지만 분망한 연주 스케줄 때문에 사양한 일도 있었다. 작곡가로서는 6곡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OP.27)와 역시 6곡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OP.28), 8곡의 교향시곡, 현악합주를 위한 소품들, 2곡의 현악3중주곡, 오페라 <피터와 광부> 등을 작곡하여 작곡자로도 왕성한 활동을 했다. 1931년, 당뇨합병증으로 왼쪽 다리를 절단해야만 하는 불운 등이 겹치며 고향인 리에주로 돌아가 세상을 떠났다. 1937년, 조국인 벨기에서 이자이 국제콩쿠르(Eugene Ysaye International Competition)가 창립되었고 1951년엔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Queen Elisabeth Music Competition)로 바뀌며 차이코프스키, 쇼팽콩쿠르와 더불어 세계3대 최정상 국제 콩쿠르로 자리매김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섯 개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이자이는 1923년 어느 날, 요제프 시게티 연주회에서 바흐의〈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를 듣고 그에 못지않은 작품쓰기를 강렬히 원했다. 그날 밤 북받치는 감동으로 들뜬 상태에서 하룻밤을 세워 대부분의 스코어를 완성하게 된 작품이 바로〈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작품번호 27이다. 이 작품은 바흐의〈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와 파르티타〉, 파가니니의〈24곡의 카프리스〉와 더불어 최고의 3대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곡으로 손꼽힌다. 이 곡은 연주자에게 마치 타르티니의〈악마의 트릴〉처럼 악몽과 같은 경험과 함께 끝없는 환희의 도취를 모두 건네준다. 그는 이 작품 속에 바로크뿐만 아니라 후기 낭만주의와 새롭게 발견된 민속음악의 전통까지 사이사이 꼭꼭 채워 넣었다. 무엇보다도 찬연히 빛나는 테크닉으로 무장한 마력적인 음색으로 호흡과 활 사이의 새로운 긴장을 촉발하고 있는 걸작이다. 이자이는 이 여섯 곡의〈독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를 당대의 명 바이올린니스트 여섯 명에게 각각 헌정하였다. 바흐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을 반영한 제1번은 헝가리 바이올리니스트 요세프 시게티에게, 바흐의 파르티타 전주곡을 인용한 제2번은 1953년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숨진 거장 자끄 티보에게, 즉흥적인 악상이 두드러지는 발라드풍의 제3번은 루마니아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게오르그 에네스쿠에게, 바흐의 엄격한 대위법과 수사학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여 곡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제4번은 프리츠 크라이슬러에게, 프랑스 스타일인 제5번은 이자이의 제자이자 그의 사중주단의 멤버인 마티유 크릭붐에게, 스페인 선율이 녹아있으면서 기교적으로 상당히 난해한 제6번은 스페인의 명 바이올린니스트 마누엘 쿠로가에게 헌정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테크닉적으로 너무 난해하면서 이질적이고 현대적인 감각 때문에 한동안 연주되지 않다가 1950년대 이후에야 많은 연주가들이 앞 다퉈 도전하고 있다.

【연주활동】- 러시아와 북유럽에서 안톤 루빈슈타인과 연주여행을 했고 파리에선 드뷔시, 포레, 쇼송, 생상스, 프랑크 등과 친교를 나눴는데 프랑크는 자신의 바이올린 소나타를 이자이의 결혼선물로 헌정하였다. 쇼송은 시곡과 바이올린 협주곡을, 드뷔시는 자신의 현악 사중주를 헌정하였으며 이자이의 연주를 듣기 위해 독일에서 리스트, 요아힘이 참석하기도 하였다. 이자이는 브뤼셀 왕립음악원 교수시절 자신의 이름을 딴 사중주단을 구성하였고 지휘자로도 활동을 하였다. 그는 톤의 강렬함과 지속성을 지닌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동시대 연주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많은 찬사를 받았다. 음악학자 마르크 패슈를은 “이자이는 순수하면서도 고도로 진화된 사운드와 빛나는 광채의 톤을 가진 연주자다”라고 그의 연주를 극찬하였다. 파가니니 출현 후 로드, 크로이처, 사라사테, 그리고 독일의 요아힘 정도만 그들의 독자적인 길을 걸어갔을 뿐 대다수 연주자들은 그 쇼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 이자이는 그만의 필살기인 톤의 강렬함으로 20세기 연주자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바이올리니스트인 윌리엄 프림로즈, 나단 밀스타인, 야사 브로드스키, 루이스 페싱어 등이 그의 제자이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인 크라이슬러는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 중에 나의 우상은 요아힘도, 사라사테도 아닌 바로 이자이다”라고 말하였고 또 다른 바이올리니스트인 칼 플레쉬 역시 “내 일생을 통해 들었던 모든 바이올리니스트들 중에서 이자이가 가장 훌륭하였다”라는 말을 남겼다. 유튜브에서 6개의 이자이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어보도록 하자. 난해하고 어렵다면 3번 발라드 곡만이라도 꼭 들어보시길 추천한다. ^^이자이의 엄청난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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