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7-03-16 14:16]
【음악가 이야기】 쥘 에밀 프레드릭 마스네(Jules, Emile-Frédéric Massenet)



가곡작곡 뿐만 아니라 음악교육자로서도 능력도 뛰어나

*출 생 - 1842512*사 망 - 1912813*출생지 - 몽토

마스네의 삶마스네라고 하면 다소 생소한 작곡가로 생각되지만 우리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듯한 타이스의 명상곡의 작곡가라고 하면 아! 라고 외칠 것이다. 그 제목을 잘 알지 못하더라도 음악을 들으면 누구나 들었을 법한 곡이다. 몽토 태생의 프랑스 작곡가인 마스네는 모친에게서 피아노 기초를 닦은 뒤 11세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해 앙브르와즈와 토마에게 사사했다. 특히 작곡법을 배운 토마의 영향을 받아 1863년에 칸타타다비드 리찌오로 로마 대상을 받고 로마로 유학했다. 1866년 파리로 돌아와 가극종조모를 오페라 코미크 극장에서 발표한 뒤로부터는 가극 작곡가로서의 제1보를 내딛기 시작했다. 36세 때부터 18년간 모교에서 작곡법을 강의하기도 했는데 제자 중에서는 샤르팡티에, 포레 등과 같은 저명한 작곡가들도 배출했다. 31세의 젊은 나이에 아카데미 회원에 추대되어 세상의 관심과 주목을 끌었다. 그의 가극은 전부 19곡이 있는데 그 작품은 세기말적이고 퇴폐적인 관능미를 찬미한 온화한 것으로 가극마농이 가장 유명하며타이스베르테르가 잘 알려진 작품이다. 당시 그는 마이어베어의 격렬한 정열과 구노의 서정성의 중간에 위치하는 가극 작곡가로서 높이 평가되었다. 또한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대표적인 가극 작곡가로 손꼽혔다. 주요작품으로는 가극마농(1884),베르테르(1893),타이스(1894), 관현악곡알자스의 풍경(1881), 가곡 비가등이 있다. 유일한 협주곡으로는 피아노 협주곡 Eb장조가 있다.

, 휴학, 그리고 대상 수상 12형제 중 막내아들이었던 마스네는 자기의 이름()을 싫어해 그 머리글자만 사용하였다. 처음에는 피아노를 배워 1859년에 1등상을 받았고, 1851년 파리음악원에 입학했는데 양친이 파리를 떠나 샹베리로 주거를 옮겼기 때문에 1856년부터 1857년까지의 1학년은 휴학해야만 했다. 1858년에는 피아니스트로서, 특히 앙주와 투르네에서 몇 차례 음악회에 출연했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 가수의 반주를 하거나 짐나즈의 관현악단에서 트라이앵글을, 이어서 카페 샤를르나 테아트르 리리크에서 팀파니를 담당하기도 했다. 르베르(화성), 사바르 M. G. Savard(대위법), A. 토마(작곡)에게 배운 뒤 1863년 푸가에서 1등상을 획득함과 동시에 칸타타 다비드 리치오(David Rizzio)로 로마 대상을 획득했다. 이것은 베를리오즈의 의견이 콩쿠르의 결과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1861년부터 마스네는 작곡 활동을 시작하여 마이어베어의 프로에르멜의 허락에 바탕을 둔 연주회용 대환상곡 Grande fantaisie de concert sur le “Pardon de Ploërmel” de Meyerbeer을 출판했는데 이 작품은 그의 요청에 따라서 1900년에 파기되었다.

결혼과 오페라 리스트의 제자였던 생트 마리(sainte Marie)와 알게 된 것은 로마에서였으며 그는 프랑스로 귀국한 후 그녀와 결혼했다. 또한 받은 대회 상금으로 이탈리아, 독일, 헝가리를 여행했고 그곳에서 받은 감명으로 나폴리의 풍경 Scenes napolitaines(1864)과 헝가리의 풍경 Scenes hongroises(1871)을 작곡했다. 단 몇 주 사이에 작곡한 4막의 오페라 코미크 극장의 돈 세자르는 187211월에 상연되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평범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 이 작품을 마스네는 1888년에 개작하였다. 이 시기에는 서곡 페드르 Phedre와 부수음악 복수의 세 여신이 작곡되는데 후자의 가치는 곧 인정을 받았다. 그러나 마스네의 진정한 명성의 확립은 18734월 오데옹 극장에서 상연된 오라토리오 막달라 마리아에 의해서였다. 개작되기는 했지만 이미 몇 년 전에 완성되었던 이 젊은 날의 작품이 주목받는 것은 단순히 마스네 개인의 착상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그 후 마농(Manon) 속에서 재현되는 마스네 고유의 표현방법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1874년에 작곡된 3부의 신비극 이브(Eve)가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몇 페이지를 제외하면 그 악보에서 현저한 진보는 보이지 않는다. 한편, 마스네는 5막의 대 오페라 라오르의 왕(Le Roi de Lahore)에 착수하는데 1872년부터 1877년에 걸쳐서 작곡된 이 작품은 18774월 오페라 극장(가르니에 궁)에서 상연되어 마스네의 명성을 결정적으로 끌어올린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이듬해 36세 때 음악원의 작곡가 교수로 임명되었으며 이어서 카미유 생상보다 먼저 프랑스 학사원의 회원이 되었다.

가곡 작곡자이며 교육자 마스네가 작곡한 285곡의 가곡 중 몇 개는 가집(歌集)으로 정리되어 있다. 4월의 시 Poeme d'avril(1866),추억의 시 Poeme du souvenir(1868), 전원시(田園詩) Poeme pastoral(1874), 10월 시 Poeme d'octobre(1876), 사랑의 시 Poeme d'amour(1879), 겨울의 시 Poeme d'hiver(1882), 저녁의 시 Poeme d'un soir(1895)이다. 몇 개의 가곡은 마스네의 오페라의 유명한 부분이나 실패작을 다시 다룬 것으로서 25곡의 가곡에는 작곡자 자신에 의해서 쓰여 진 오케스트라 반주가 붙여져 있다. 앙브루와즈 토마의 사후, 파리 음악원 원장으로 와달라는 권유를 받았으나 그는 단호히 거절했다. 일이 많아지고 바빠진 관계로 작곡과 교수직도 사임했다. 그는 제자들도 많았는데 천부적인 교수였던 마스네의 교육자적 능력도 인정받았다. 마스네가 그들이 각기 지닌 개성들을 억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작품이 그 이상의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마스네로부터 받은 철저한 교육의 결과였다. 제자들 중에는 알프레드 브루노, 가브리엘 피에르네, 크자비에 르루, 귀스타브 샤르팡티에, 앙리 라보, 샤를르 쾨클랭, 플로랑 슈미트 등이 있는데 이들은 모두 로마 대상의 수상자였으며 또한 이 콩쿠르에 참가하지 않았던 에르네스트 쇼송, 기 로파르츠 등도 손꼽을 수 있는데 김봄소리의 타이스의 명상곡연주를 들어 볼 것을 적극 추천한다.





[기사입력일 : 2017-03-16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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