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7-07-13 17:26]
<음악가 이야기〉 이탈리아 작곡가 - 줄리오 카치니(Giulio Caccini)



바로크음악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카치니는 시와 문학에도 능통

 

·출 생:1551년, ·사 망:1618년, ·국 적:이탈리아(로마)

줄리오 카치니(Giulio Caccini)는 이탈리아의 작곡가이자 류트(16세기에 유행하던 발현악기)연주자로 대표작인에우리디케는 가장 오래된 오페라 중 하나이며 바로크음악의 발전에 큰 영향력을 끼쳤던 이탈리아의 음악가이다. 음악뿐만 아니라 시와 문학에도 능했으며 음악교육과 예술론, 비평 등에도 상당한 공헌을 했던 일종의 종합예술가였다.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르네상스기에 해당되지만 바로크음악의 개척에 큰 공헌을 했기 때문에 바로크음악가로 구분하기도 한다. ‘야코포 페리등과 함께 오페라의 개척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후대에 중요한 음악적 표현수단이 된 레치타티보(recitativo)나 서정가곡의 원조 가운데 한 명이 바로 카치니이다.

그의 생애줄리오 카치니는 1551년 로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미켈란젤로 카치니는 목수였는데 피렌체의 유명한 조각가 조반니 카치니의 형이다. 일찌감치 음악에 재능을 드러냈으며 현악 연주자와 성악가로서 각광을 받았다. 피렌체의 대공이었던 프란체스코 메디치(Francesco Medici)는 소년 카치니를 일종의 음악유학 형식으로 피렌체로 데려와서 본격적인 음악교육을 시켰다.(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의 유명한 예술가들 중에 메디치 가문과 관련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로 메디치 가문의 예술에 대한 독점욕과 집착은 정말 대단했다. 소년 카치니도 꿈나무 육성 차원에서 피렌체로 데려간 것으로 보임) 카치니가 28세 때인 1579년경이 돼서야 메디치 가문의 전속 음악가이자 성악가(테너)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는데, 그는 이후에도 계속 피렌체에 머물면서 피렌체를 대표하는 음악가가 되었다. 카치니는 성격적으로 출세욕과 야심이 대단했던 것으로 보이며 이 시기부터 그는 귀족들의 결혼식, 종교행사, 축제 등에서 가수 역할을 도맡았으며 특히 오페라의 전신에 해당되는 음악극 인테르메디오(Intermedio)에서 주역으로 활약하였다. 노래, 연주, 작사, 작곡, 음악이론 등 음악 전반에 모두 뛰어났던 야심가 카치니는 카메라타 모임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는 한편 후학 양성에도 힘을 기울여 많은 음악지망생들에게 작곡과 연주를 가르쳤다. 카치니의 제자들은 이후 이탈리아 각지에 카메라타의 음악철학을 전파시켰으며 그 덕분에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같은 차세대 음악가들이 카메라타의 철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오페라 '에우리디체' 출판 이후 1618년 사망할 때까지 카치니와 관련된 기록은 많지 않은데 사망하기 얼마 전까지도 피렌체에서 계속 가수이자 연주자 및 음악교사로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야심작 에우리디체가 라이벌이었던 페리에게 밀린데다 17세기 이후 바로크 스타일이 본격적으로 대두되면서 쟁쟁한 음악가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작품 활동은 많이 위축되었던 것으로 보인다.(참고로 페리의 경우 에우리디체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들은 여러 작곡가들과 공동으로 작곡한 경우가 많다.) 말년에는 젊은 시절에 손대지 못했던 다성 양식의 종교음악 작곡 및 연주를 했다는 기록도 있으나 현재 남아있는 작품은 없다. 다만 1614년 모노디 양식의 '새로운 음악' 2편이 출판되었는데 이 때에는'새로운 음악과 새로운 작곡법(Nuove Musiche e nuova maniera di scriverle)'이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줄리오 카치니는 1618, 향년 67세를 일기로 피렌체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피렌체의 산타 아눈치아타(St Annunziata) 성당에 안장되었다.

@아베마리아 - 카치니아베마리아는 카치니의 곡이 아니다. 알비노니의 아다지오는 알비노니의 곡이 아니다. 놀랍게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우리가 즐겨 듣는 명곡 중 여럿은 이처럼 작곡자가 잘못 알려져 있다. 새로운 곡을 쓴 작곡가가옛 작곡가의 곡을 발견한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었을 수도 있고, 단지 실수나 잘못된 추정에 의해 우리가 작곡가를 잘못 아는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이를음악적 위작(僞作, Musical Hoax)’이라고 부른다.‘음악적이라는 표현은 주로선율처럼 부드럽게 들린다.’는 관용어로 쓰이므로음악사 속의 위작이 더욱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카치니의 아베마리아]1970년 러시아의 류트 연주자이자 기타 연주자, 바로크음악 연구가였던 블라디미르 바빌로프(Vladimir Vavilov, 1925~1973)가 발표한 노래다.‘오페라의 발명자중 하나로 알려진 이탈리아 작곡가 줄리오 카치니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바빌로프는 1960~70년대 국영 악보 출판사의 편집자로 활동했으며 당시 소련의 고음악 연구를 주도한 주인공이었다. 그는 1970년 국영 멜로디야 레이블로‘16~17세기 류트음악이라는 음반을 내놓았다. 대부분은 작곡가 불명으로 표기된 연주곡과 노래들이었다. 이중 한 곡이아베마리아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역시 작곡가 불명이었다. 바빌로프가 죽고 2년 뒤인 1975, 소프라노 이리나 보가체바가 이 곡을 다시 멜로디야 레이블로 내놓았다. 이번에는카치니가 작곡가로 표시되어 있었다. 바빌로프의 음반에 참여했던 오르가니스트 마크 샤킨이 이곡을 카치니의 것이라고 설명한 데 따른 것이다. 이 곡은 1987년 메조소프라노 이리나 아르키포바가 다시 음반으로 내놓으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1995년 발매된 소프라노 이네사 갈란테의 음반은 이곡을월드 히트로 올려놓았다.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바빌로프같은 무명인의 음반을 사랑받게 하기 위해 작곡가를 카치니라고 소개했다는 것이다. 바빌로프의 아이디어를 이해한다고 해도 그의 동료였던 오르가니스트 샤킨이 이 노래에카치니라는 작곡가를 써넣은 것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사실 필자도 카치니의 아베마리아를 좋아해서 조수미의 노래나 첼리스트 연주로 자주 들었었는데 카치니의 곡이 아니라서 조금은 실망했다.Amarilli, mia bela(아마릴리 내 사랑) 이 곡은 카치니의 유명한 노래인데 소프라노뿐만 아니라 바리톤으로 들어봐도 정말 아름다운 곡이다

Amarilli mia bella(나의 아름다운 아마릴리)

Non credio del mio cor dolce desio(내 마음의 달콤한 소망인 여인)

D'eser tu l'amor mio?(내가 그대를 사랑함을 믿지 않느뇨?)

Credilo pur e se timor t'assale(제발 믿어주오 혹 두려운 마음 있어도)

Dubitar non ti vale(의심할 필요는 없네)

Aprimi il peto e vedrai scrito in core(내 가슴 열어보면 마음에 쓰인 것을 볼 수 있다)

Amarilli Amarilli Amarilli e il mio amore(아밀릴리 영원한 내 사랑이라고)

 

 

 

 

 

 

 

 





[기사입력일 : 2017-07-13 17:26]
업계소식 한국팬플룻오카리나 강사협회 행사(공연)
상호 : 시사음악신문 / 대표 : 조오정 / 사업자 등록번호 : 105-08-69218 / 주소 : 서울특별시 마포구 마포대로 127 (공덕동 풍림 VIP빌딩 1102호)
TEL : 02-706-5653 / FAX : 02-706-5655 / Email : cho5jung@hanmail.net
copyright(c) 2013 시사음악신문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