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8-01-18 14:48]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왈츠의 아버지’ 아들 2세는 '왈츠의 왕'이다’



오스트리아 빈 출생의 요한 슈트라우스하면 왈츠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유명한 곡으로는 ‘라데츠키 행진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 등이 있다. 그런데 라데츠키 행진곡,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강의 작곡가가 1세인지 2세인지가 너무나도 헷갈린다. 그래서 이번 호에는 아버지 1세와 아들 2세에 대해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요한 슈트라우스 1세)
요한은 아버지와 아들 2대에 걸친 이름인데 1세 요한은 ‘왈츠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2세 요한은 ‘왈츠의 왕’이라 불리고 있다. 왈츠의 왕 요한에게서 많은 걸작들이 작곡되었으며 요한 슈트라우스라고 하면 흔히 아들 요한을 가리킨다. 또 왈츠의 왕에게는 동생 요제프가 있었는데 이 동생도 아름다운 왈츠를 남겼다.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는 1804년 3월 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 1849년 9월 25일, 빈에서 사망한 순수한 오스트리아 사람이다. 폴리샨스키에게 바이올린을, 자이프리트에게 화성학을 배웠고 15세 때 시필 댄스홀 관현악단에 들어갔으며 19세에 라너 4중주단에 가입하여 이 악단 악장 대리까지 진급했다. 22세 때 관현악단을 스스로 조직하여 여러 모임에 출연, 자작품을 연주하여 크게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1833년 빈 군악대의 악장으로 취임하여 독일, 네덜란드, 벨기에 등에 순방했다. 1837년부터 38년에 걸쳐 단원 28명을 이끌고 파리와 런던을 연주 여행하여 많은 찬사를 받았다. 1845년에 궁정 무용음악회의 지도자가 되어 음악인으로서는 가장 영광스러운 지위에 올랐다. 작품번호가 붙은 왈츠 149곡, 갤럽 29곡, 폴카 14곡, 카드리유 34곡, 코티용(cotillon), 행진곡 등 수십 곡이 있다. 《사랑받는 안넨》, 《라데츠키 행진곡》 외 150곡의 왈츠곡이 유명하다. 1826년부터 자작곡을 연주하여 빈 군중들의 호평을 받았으며1833년 유럽에서 가진 연주여행은 그의 명성을 확고부동하게 만들었다. 1834년에는 제1빈 시민연대의 악장으로 활동하였고 1835년에는 궁정무도회의 지휘자로 취임하기도 하였으며 빈 지역의 대중음악을 지배하였으나 1849년에 세상을 떠났다. 아들 요한, 요제프, 에두아르트도 유명한 음악가이다. 초기에는 유명한 기악곡을 편곡하여 연주하였으나 점차 자신의 악풍을 확립하여 서주, 몇 개의 왈츠, 코다로 이루어진 빈 왈츠의 원형을 라너와 함께 확립하였다. 그는 제2박, 제3박의 독특한 리듬의 연주와 더불어 세련된 오락음악의 보급에 공헌하였다. 또한 그는 파리의 춤곡 카드리유를 빈 스타일로 개조, 도입하여 갈채를 받기도 하였다.

(라데츠키 행진곡 Op.228)
너무나 유명한 곡이다. 빈에서 매년 섣달 그믐날과 원단에는 슈트라우스 일가의 음악을 중심으로 한 새해맞이 콘서트가 ‘빈 필하모니 관현악단’의 연주로 개최된다. 이 연주회를 매듭짓는 것이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1세의 명작인 ‘라데츠키 행진곡’이다.
새해맞이 콘서트에서 이곡이 시작되면 지휘자는 연주 도중 한 바퀴 빙 돌아 청중을 향해 지휘를 하고 청중은 연주에 맞춰 손장단으로 화답한다. 스테이지와 청중이 일체가 된 광경이 연출되며 무드가 최고조인 곳에서 끝난다. 19세기는 자유의 세기, 춤의 세기라고 불리어지고 있는데 19세기에 들자 빈을 중심으로 대유행한 춤이 왈츠다. 왈츠의 아버지라고 불리어지고 있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는 요제프 러너와 함께 그 빈 왈츠의 형식을 확립하고 빈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았다. 빈의 중앙 묘지 제 32구 A 일곽에는 빈과 관계가 있는 악성들의 무덤이 모여 있는데 베토벤이나 슈베르트, 브람스와 같은 대작곡가의 무덤이 나란히 있는데 슈트라우스 일가의 사람들이나 러너의 무덤이 있는 것을 봐도 얼마나 빈 사람들이 그들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1986년 오스트리아에서 상영된 ‘요한 슈트라우스’ 영화도 있었는데15세 이상 관람가로 감독은 프란즈 안텔, 주연은 데이빗 캐머런이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J.B.슈트라우스의 장남이다. 악단을 이끌며 연주여행을 하였고 작곡에도 열중하여 새로운 독자적인 왈츠양식 ‘연주회 왈츠’를 낳았다. 왈츠에 처음으로 합창이 곁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등의 대규모 왈츠와 《집시남작》 등의 오페레타를 작곡했다. ‘왈츠의 왕’으로 불리며 ‘왈츠의 아버지’ J.B.슈트라우스의 장남이다. 아버지는 처음 그를 상공학교(商工學校)에 입학시켜 은행업을 배우게 했으나 음악에 대한 집념이 강한 그는 아버지 몰래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 1843년 아버지와 어머니가 별거생활에 들어가자 이를 기회삼아 생애를 음악에 바치기로 결심하고 피아노 교수로 생계를 꾸리면서 바이올린 외에 작곡이론을 배웠다.
아버지와의 갈등은 1846년에 일단 수습되었으나 그는 아버지의 악단에는 가담하지 않고 자기 악단을 인솔하여 독립활동을 계속하였으며 1849년 아버지가 죽자 아버지의 악단도 지휘하게 되어 동생이 악단에 가담하기까지 수년 동안 바쁜 세월을 보냈다. 1851년에는 함부르크·프라하·드레스덴·라이프치히·바르샤바 등지에서 연주를 하였으며 분주한 가운데도 작곡에 열중하여 1853년 1년 동안에 27곡 이상을 작곡했다. 그러한 열정과 과도한 무리로 병석에 눕게 되자 악단을 동생에게 맡기고 요양지로 옮겨 다니면서 건강 회복을 위해 노력했으며 건강이 회복되자 1855년 다시 러시아 페테르부르크까지 연주여행을 하였다. 1862년 통칭 예티(Jetty)라고 불린 가수 헨리에테 트레프츠와의 결혼으로 커다란 전기를 맞았다. 그의 연주는 공원에서의 연주회와 자기 작품의 첫 공연에 한정하였고, 온갖 정열을 작곡에 투입해 새로운 독자적인 왈츠양식 ‘연주회 왈츠’를 낳았다. 1867년부터는 왈츠에 처음으로 합창이 곁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예술가의 생애》, 《빈 숲속의 이야기》, 《술·여자·노래》, 《빈 기질》 등의 대규모 왈츠의 걸작을 작곡하고 1870년 어머니와 동생 요제프가 모두 세상을 떠나 큰 타격을 받았으나 오펜바흐와 수페 등에게서 자극을 받아 그때부터 오페레타의 작곡도 시작 《박쥐》, 《집시남작》 등을 비롯한 작품으로 당시 빈 오페레타계에 군림하게 되었다. 1878년 아내가 죽자 30세 연하인 릴리 디트리히와 재혼했으나 어울리지 않는 이 결혼은 얼마안가 파경을 맞았고 1887년 아델레 도이치와 재혼, 빈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축복받는 만년을 보냈다. 그는 오페레타 16곡, 왈츠 168곡을 비롯하여 많은 무도곡을 작곡하였는데 이 모든 작품에는 인생을 찬미하는 빈의 독특한 분위기가 담겨 있다.

 






[기사입력일 : 2018-01-1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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