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8-04-12 18:45]
오카리나 친구와 행복한 기행 - 68
러시아가 낳은 세계적인 음악가 ‘표트르 차이코프스키


표트르 차이코프스키는 공학자겸 하급관료이며 러시아정부 소유의 광산 감독관인 아버지 일리야 페트로비치와 프랑스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차이코프스키는 4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기는 했으나 어학계통에 더욱 재능을 보여 6~7세에 독어, 불어를 구사할 정도였다고 한다. 차이코프스키는 어려서부터 음악적인 재능은 보였으나 그의 부모가 음악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가지고 있어 음악이 아닌 당시 상류계급의 풍조에 맞추어 법률학교에 입학하였고 훗날 법무성 하급관리로 임용되어 근무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직과는 전혀 맞지 않는 본인의 적성에 대한 심각성을 깨닫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진학하여 음악교육을 받게 된다. 1862년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에 진학하여 본격적인 음악수업을 받은 그는 음악적 재능을 크게 인정받아 1865년 말, 루빈스타인 형제의 추천으로 모스크바 음악원 화성법 교수로 가게 된다. 모스크바 음악원 재직 중 안토니나 밀류코바와 결혼했으나 사이가 좋지 못 했고 철도 경영자 부호의 미망인 폰 메크 부인을 알게 돼 재정적 지원을 받으면서부터 교직을 떠나 창작활동에 전념했다. 그의 작품은 교향곡 6, 미완성 교향곡 1, 교향시 1, 오페라 11, 발레곡 3곡 이외에도 다수의 실내악곡 ·피아노곡 ·가곡 및 협주곡 등이 있다.

1867<폭풍우>를 작곡했을 무렵에는 베를리오즈의 영향을 받았으며 1868 발라키레프를 통해 러시아 5인조로 알려진 민족주의 음악가들과도 교류하게 되었다. 차이코프스키가 자주 만난 음악가들은 무소그르스키, 보로딘, 림스키-코르사코프 등이었다. 한편 발라키레프는 젊은 차이코프스키의 교향적 환상곡을 비판하였으며 관, 현악 작품인 환상서곡<로미오와 줄리엣>의 형성을 지도하였다. 1869 발라키레프의 제안으로 서곡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을 작곡했다. 차이코프스키를 알았던 사람들이 말하는 그의 본질적인 매력은 민족주의적 희가극대장장이 바쿨라 Vakula the Smith(1874, 초연 1876)에서 가장 잘 나타나고 있으며 이 오페라를 개작한귀여운 구두에서는 러시아 5인조 가운데 가장 독창적인 작곡가인 모데스트 무소르크스키가 니콜라이 고골리의 우크라이나 민화를 각색한 오페라소로친스크의 시장 Sorochintsy Fair과 유사한 장점을 지녔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의 오페라는 무소르그스키가 작곡한 그 어떤 오페라보다도 발라키레프의 민속음악적 어법과 더욱 밀접한 관계가 있다. 1876 그는 자신의 작품을 지지하는 부유한 미망인 나데츠다 폰 메크를 만나면서 특별한 인연을 쌓게 되었다. 그녀는 차이코프스키에게 충분한 연금을 지불하여 교수직에서 벗어나 작곡에만 몰두하게 했다. 곧바로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직을 사퇴한 차이코프스키는 자신만의 작업실에서 작곡활동에 몰두하거나, 피아노 연주, 지휘 등으로 나날을 보냈다. 차이코프스키는 나데츠다를 만나고 싶어 했지만 그녀가 사양하여 두 사람의 만남은 한 번도 이루지 못한다. 1877교향곡 4번을 작곡하고 1877말부터 1878까지는 푸슈킨의 시에서 영감을 얻어 작곡한 오페라예브게니 오네긴을 발표하였다.

1878 피아노 소타나 G장조 작품 37을 발표했고 그 해부터 관현악 모음곡 1d단조 작품 43을 써서 1879에 발표했다. 또한 나데츠다 외에도 그의 또 다른 후원자인 황제 알렉산드르 3 대관식 행사음악 등을 작곡했다. 한편 이 무렵, 그는 상업적인 성공을 목적으로 작곡한 그의 최초의 오페라곡인오를레앙의 처녀를 작곡하여 1879 1년 만에 완성시킨다. 본래 오를레앙의 처녀는 예술적인 목적으로 작곡했지만 그가 보기에 먼저 작곡한예브게니 오네긴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만큼 극적이지 못하다고 판단하면서 상업적인 목적으로 발표한다. 1878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작품35, 1880 현을 위한 세레나데C장조 작품 48, 이탈리아 기상곡작품 45 등을 작곡했으며, 1880말에 작곡한 나폴레옹알렉산드르 1의 전투를 표현한 1812년 서곡작품 49도 작곡했는데 1812년 서곡은 큰 인기를 누렸으며, 시연 직전 실제 대포를 발사하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피아노 협주곡 1, 바이올린 협주곡, 교향곡 4·5·6번등이 유명하다.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호두까기 인형발레곡들도 많이 공연되는 작품들이다. 이 외에도 오페라 예브게니 오네긴,스페이드의 여왕도 서양의 오페라 극장에서 유명한 작품들이다. 감정에 섬세하게 말하는 그의 음악적 성향은 독일 낭만주의 음악 성향과 매우 가깝다. 1885년에 작곡한 만프레드 교향곡(Manfred Symphony) 작품 58은 아낌 없는 격찬을 받았는데 절망적인 상황에 몰린 차이코프스키의 마음을 다잡고 작곡활동에 전념하는 배경이 되었다. 1885 모스크바 근처 마이다노보에 자신의 집을 샀으며, 1892에는 소비에트 연방 시절에 차이코프스키 박물관이 된 클린 근처의 단독주택으로 이사 가기 전까지 마이다노보의 저택에서 살았다. 이 때는 러시아에서 보다 많은 여행을 시작했는데 코카서스에서 보낸 2번의 휴가는 특별한 휴가였고 트빌리시에 방문했을 때는 그의 명성을 익히 알던 마을 지식인들과 시청 고위 관리들의 소개로 열렬한 환대를 받고 돌아왔다. 이 무렵까지도 지휘에 대한 거부감과 망설임이 있었던 그는대장장이 바쿨라를 새로 개작하고 성공적으로 연주하여 지휘에 대한 두려움이나 어색함을 극복하였다. 1888 독일의 라이프치히를 방문, 이곳에서 그는 요하네스 브람스에드바르 그리그를 만나 음악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았다. 이어 함부르크, 베를린 등을 거쳐 프라하로 갔다가 프랑스 파리를 거쳐 영국의 런던 등을 여행했다. 1888 한 해 동안 그는 자신의 작품을 지휘하기 위한 유럽 순회연주 여행을 했으며 그의 음악은 어느 곳에서나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1888에 작곡한 교향곡 5e단조 작품 64를 비롯한 그의 작품들을 작곡하는 도중 점점 감정적으로 격해져 히스테리와 절망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이후로는 전에 작곡한 많은 작품들의 지속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내적인 절망은 계속되었다. 1890 푸시킨의 곡을 각색한 2번째 오페라스페이드의 여왕을 발표하였고, 그의 작품 중 특별히 그가 좋아한 발레곡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발표, 공연하였으나 처음에는 냉담한 반응을 얻었다. 그러나 1890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갈채에도 불구하고 우울증과 함께 신경쇠약 증세는 심해졌다. 말년의 차이코프스키는 미국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과 미주 각지를 순회연주, 지휘, 공연 등을 상영하였는데 1889에는 영국에 널리 알려졌던 1874~75년작 자신의 피아노 협주곡 1B단조 작품 23을 공연하여 인기를 누렸고, 1893영국을 방문했을 때는 런던에서 교향곡 4번을 지휘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1893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명예 음악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1889부터 4년간의 순회공연은 모두 성공적이었고 자신의 작품호두까기 인형을 서둘러서 연주회용 음악으로 개작한<호두까끼 인형 모음곡>역시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계속된 연주와 대중적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신질환과 조울증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1890 104, 전 재산을 잃어버렸다며 폰 메크 부인의 갑작스런 결별 통보를 받은 그는 10월 말부터 폰 메크 부인과의 관계와 연금이 끊어지자 병세는 더욱 악화되었다. 1893 8 차이코프스키는 교향곡 6b단조 작품 74를 완성하고 그해 10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을 지휘했지만 청중들은 야유를 보내거나 호응하지 않았고 그는 상심했다. 그러나 차이코프스키는 망상에 빠져 그릇된 기대를 가졌으며 자신의 작품을 쟁점으로 부각시키려 했다. 차이코프스키는 방송에도 출연하여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의 교향곡 6번에 대한 '신비한' 해설과 더불어 그의 모든 영혼을 쏟아서 작품을 설명하였으나 청중들로부터 외면을 당했다. 1893 116, 콜레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사망했다. 그러나 1979년 소련 문화성에서 부검한 결과 비소 중독이라는 결론이 나와 사인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는 남아 있는데 당시 향년 53세였다. 그의 6번째 작품이자 총결산이랄 수 있는비창교향곡을 자신의 지휘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하고 1주일 후의 일이었다. 게다가 교향곡 7번을 동시작곡하다 미완성으로 남기고 운명했던 것이다.

 

배워봅시다안단테 칸타빌레(오카리나 매니아 79p)

 

1. 이 곡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하여 turn (돈꾸밈음) 연습을 충분히 하도록 합시다.

2. Cantabile 의 느낌을 위해서 슬러를 최대한 지키도록 하되 오카리나의 특성상 소리가 뭉게진다면 3개 이상의 음을 연잇는 슬러에서는 텅잉을 하되 부드럽게 연주되도록 합시다.

3. 첫째 단과 마지막 단에서 낮은 가 여러 번 등장합니다. 4도 위의 와 번갈아 연주되기 때문에 음정이 높아질 위험이 있습니다.(주의하세요)

4. 50마디에서 55마디 사이에 등장하는 반음은 연주에 앞서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겠습니다. 특별히 52마디 ‘#의 경우 앞뒤에 ‘#로 인해 운지로는 멜로디 진행에 어려움이 있어 오른손의 새끼손가락은 open 한 상태로 집게손가락 앞에 작은 운지구멍(라 구멍)을 막아서 ‘#’ ()음을 내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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