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9-03-21 16:31]
Pianist 조가람의 Classic Essay



인생은 아름다워( Life Is Beautiful )’ 은 로베르토 베니니의 주연, 감독의 작품으로 20세기 가장 잔인하고 불행한 사건인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소재를 밝고 유머러스하게 승화시켜 전 세계인들에게 삶이 무엇인지를 되돌아보게 하며 많은 사랑과 감동을 전한 Sad movie.

 

그 어떠한 아름다움에 대하여애수와 애환, 폭력과 비정당성, 때로는 온당한 흐름과 예기치 못한 축복 혹은 불행, 온정과 희생, 서늘하다 못해 시린 현실 속에서도 인생은 아름답다며 세기 말 그 영화는 메시지를 전달했고 전 세계인들은 삶을 되돌아보며 눈물을 훔쳤다. 필자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사람과 삶에 대한 생각을 해본다. 필자에게 다가오는 클래식 음악 또한 그러한 부류의 아름다움이다. 흔한 클리셰인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당신이 아닌 수많은 감정의 카타르시스와 인생의 기록인 터, 생생히 아름다워 때로는 뜨거운 커피가 가슴을 타고 내려가듯 가슴 속에 실제로 흐르는 듯한 생경한 자극에 아찔하기도 할 정도이니 현학적 정념의 청각화도 지성의 상아탑도 아닌, 클래식 음악은 내게 실존 그 자체인 것이다. 피아니스트로 살아오면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 실재감만큼은 한 결 같이 변함이 없다. 피부로 느껴지는 듯한 감정의 파장. 청자로서 나는 묶인 끈을 풀고 파장의 쾌락에 몸을 던져 지극히 수동적으로 넘실거리고야 마는음악의 종이 되고야 마는 행복하고 순수한 쾌락주의자인 것이다. 업으로 삼아 고군분투하면서도 질리지 않고 순수한 청자로서 살 수 있는 행운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일까? 단순한 취향의 문제일까? 라며 나의 소우주를 돌아본다.

 

아름다움이 스며들다 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 등 감각의 종류와 그 원인이 되는 물리적인 자극 사이에는 11의 대응이 있지만 때로는 이 원칙에 반하여 음파가 귀에 자극될 때 소리를 들을 뿐 아니라 색상을 느끼거나 후각과 함께 혹은 글씨를 보고 냄새를 느낄 때도 있다. 이와 같이 각기 다른 감각의 경계가 연결되는 감각현상이 공감각인데 이러한 상호영향은 살면서 겪는 경험과 결합하여 무의식에 머무르다 부지불식간에 발현된다. 그것은 한 사람의 취향의 뿌리가 되기도, 재창작과 재해석의 영역에 서있는 연주자의 상상력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나의 최초 공감각적 기억은 만 네 살의 첫 연주회 때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제 5번의 올림 바단조가 어찌나 슬펐던지 당시 읽던 <작은 아씨들>의 베스의 죽음을 떠올리며 눈물을 삼켰다. 이 기억은 내가 클래식 음악을 학구적 예술이기 이전에 어느 종류의 일차적 감각과 감정으로 받아들인 최초의 순간. 몇 년 뒤에는 또 다른 기억으로 아버지의 손을 잡고 조금 늦게 도착한 영화관의 문이 열리며 쏟아지듯 들려 온 영화 <아나스타샤>OST는 경쾌한 왈츠 리듬이 단조의 구슬픈 조성에 얹혀있었다. 누더기 옷을 입은 잊혀진 공주의 춤과 리듬과 조성의 역설적 아름다움으로 이어졌다. 그 파라독스의 심상은 당시 연습하던 F.Chopinb minor Waltz 곡을 이해하는 영감이 되었다. 여전히 경쾌한 템포의 단조 왈츠를 들을 때면 잊혀진 공주의 춤이 떠오른다. 길을 가다가 스치는 향수 내음에 옛 연인이 떠오른 적이 있는가? 우연히 찾은 식당에서 뜬 첫 술에 할머니의 된장찌개가 떠오른다면? 오랜만에 들은 옛 노래 속에 그 때 그 시절의 감정이 불현듯 피어오른다면 당신도 공감각을 경험하는 중이다.

 

틀고, 듣고, 들르다<틀다> - 아침 일정 시작 전이나 급한 와중에도 심혈을 기울이는 행위가 있다. 바로 채비를 하는 동안 들을 음반을 고르는 일. 젖은 머리카락이 채 마르기도 전에 뛰어나가는 한이 있더라도 음반을 고를 때만큼은 숨죽이고 고민하는 것이다. 이는 아버지의 오래된 습관이었다. 획득 형질은 유전이 되지 않는다는데 DNA에 새겨져 있는 것 마냥 아버지의 많은 습관을 물려받았다. 아버지는 아침에 눈을 뜨시면 직접 만드신 스피커와 진공관 그리고 기분에 따라 LP, 때로는 CD를 연결해 음악을 틀어 놓으셨다. 레퍼토리는 주로 차이코프스키의 비창이나 쉔베르크의 정화된 밤,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 라흐마니노프 심포니의 느린 악장들, 슈베르트의 가곡 따위의 애수가 넘쳐 한마저 느껴지는 단조의 클래식 곡, 그리고 한 달에 두어 번은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경쾌한 심포니를부엌 옆에 붙어 있던 내 침실로 들려오는 밥솥이 들썩거리는 소리와 지단 부치는 고소한 냄새와 클래식 음악은 일종의 아침 의식이었다. 잠들기 전 읽은 책의 내용이나 간밤에 꾼 꿈과 현실이 잠결 속에서 문 틈 사이로 들려오는 음악과 뒤엉키면 나는 일어나기 전 이런 저런 몽상에 잠겨 잠시 숨을 고르곤 했다. 그리고 그 날 학교를 마치고 연습실에 들어가면 혼자만의 세상에서 연습하던 곡을 아침의 몽상과 연결시켜 보았다. 제멋대로의 해석이었을지언정 아침의 음악소리는 곧 스승이었다. 몽상을 소리로 실현시키는 것이 어찌나 황홀하던지. 아버지가 퇴근하시면 우리는 한 팀이 되어 여러 음반을 들어보면서 비평가 놀이를 했다. 돌이켜보면 이것이 바로 진정한 음악교육이 아니었던가! 음악은 이렇게 나의 삶속으로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듣다> - 나는 스스로 듣기 시작했다. 여전히 찾고 듣는 것을 삶의 낙으로 삼고 있지만 어린 시절 들었던 곡들은 유독 강렬히 마음에 남아 현재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용돈을 모아 처음으로 산 에브게니 키신의 쇼팽 발라드 전 곡 앨범. 연습실 창가에 앉아 성당의 초를 켜듯 경건한 마음으로 포장을 뜯었다. 중학교 1학년 가을 날, 홀로 앉아 듣는 쇼팽 발라드 4번은 참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으로도 눈물이 날수 있구나!~ 라며 그 길로 연습을 시작했다. 느끼는 대로 연주하고 싶어 선생님께도 비밀로 하고 시작한 연습은 듣고 쳐보고의 반복이었다. 듣는 아름다움이 내 손에서 피어나는 놀라움에 당시에는 독학이라며 스스로가 뿌듯했었으나 생각해보면 키신이 내 스승이었고 듣는 것이 수업이었던 셈이다. 듣다보니 궁금해져 크리스티안 짐머만,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음반도 구매했다. 전설적 연주자들의 각기 다른 해석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에브게니 키신의 특별한 Klang(소리의 울림)과 빈번함에도 설득력이 있었고 아름답던 템포 변화와 짐머만의 부드럽고도 잘 짜여 진 설계의 루바토, 다채로운 데크레센도, 유연한 개연성과 지성, 확신이 있기에 가능한 관조적 여유, 호로비츠의 다양한 페달링, 색채의 변화, 화성의 견고함과 효과음, 드라마틱한 분위기의 전환. 얼마나 귀한 깨달음이었던가!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곡을 계속해 연주하고 있다. 해마다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이 곡은 피아니스트로서 나는 어디쯤에 서 있는가를 가늠하게하며 시금석으로 동행중이다. ‘뇌가 유연한시기에 좋은 음악을 많이 들으면 이후의 인생에서 음악을 깊이 즐길 수 있는일생의 자산을 갖게 되는 셈이다. -<피아니스트의 뇌> 중에서

<들르다> - “들러라. 들러야 한다. 연주자의 호흡, 심지어 호흡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동승할 수 있는 곳에 들러라. 양질의 연주회를 만나는 것은 운이 따라야 하는 것이지만 일단 행운을 맞닥뜨리면 새로운 지경으로 문이 열릴 것이다.”이 내용은 2013CDDVD로만 접했던 에브게니 키신의 실황 연주를 베를린 필하모니 홀에서 듣고 흥분에 겨워 일기장에 쏟아냈던 기록의 일부분으로 가감 없는 표현과 감정의 표출이 심해 웃음이 새어 나올 수도 있으니 참고만 해 주시기 바랍니다. “슈베르트의 즉흥곡 D.899!!! 화성이 바뀌는 순간 친구와 동시에 눈으로 말했다. 말도 안 돼!! 라며 요람에 누운 아기가 엄마의 다독이는 손길에 잠이 들듯 아마빛 머리의 소녀가 밀짚모자를 쓴 채 금빛 갈대밭에서 바람을 맞으며 서있었고슈베르트는 자꾸만 공간이동을 했다. 우리는 그저 따라 여행하면 되는 것이었다. 키신의 심장 속으로 초대받아 눈앞에서 부유하는 심상들을 보는 것만 같았다! 키신의 울림은 얼마 전 이 곳에서 들은 짐머만의 소리에 비해 바로 귀 옆에 와서 울렸다. 비밀이 무엇일까? 그리고 베토벤가장 적당한 힘으로 피아노의 해머가 현을 치는 순간 발생하는 그 주파수의 파동은 완벽히 적절한 투명한 울림을 이루며 말년의 베토벤의 내면으로, 신에 대한 경외심으로, 현존하지 않는 여인과의 사랑과 같은 심상으로 바뀌었다. 내 앞의 나이가 지긋한 노신사 여럿은 어딘가를 응시하며 눈물을 훔쳤다. 불과 몇 시간 전 브루크너 교향곡의 따뜻한 감동에 대해 공감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는데 나는 오늘 다정한 음악이 주는 기쁨을 경험했다! 입 꼬리는 올라가고 눈에서는 따뜻하고 다정한 눈물이 흘렀다. 행복한 눈물이 이런 걸까. 이 폭발하는 감정을 마음껏 상상하며 잠들어야지~ 그리고 내일 이 상상을 연주해야지!” 순도 100%의 격한 전율이 느껴지지 않는가.^^ 그 날의 울림에 대한 프리즈 프레임은 장조 곡의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이정표가 되어 듣는 기쁨도~연주의 기쁨도 배가 되었다.

 

청각의 황금시대 고희를 웃도는 연세 지긋한 나의 독일 은사님은 스마트폰에서 음원을 검색하며 희미한 미소를 지으셨다. 당신이 소비에트 공화국 유학 시절, 악보를 들여다보고 이 음표들이 실체화되면 어떤 소리를 낼까! 라며 며칠이고 상상을 하다가 우연히 그 곡을 들을 수 있는 연주회라도 있으면 악보를 들고 벅찬 마음으로 달려가 한 음을 놓칠세라 귀 기울이셨다고그리고 그 시절 귀하게 들으신 것들은 녹음이나 기록으로 아직도 생생히 남겨두었다고우리는 황금시대에 살고 있다. 로마제국의 알렉산더 대왕도 이러한 청각의 호사는 누리지 못했을 터, 우리는 손 안의 세상에 몇 글자만 입력하면 가지각색의 명반을 들을 수 있고 한국의 크고 작은 홀에서는 매일 뜨거운 연주회가 울려 퍼진다. 누리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우리에겐 이 시대의 낭만을 만끽하고 향유해야할 의무가 있다. 틀어라 그리고 들어라! 들어라!

 

피아니스트 조가람 Profile

선화예술중·(실기우수상, 성적우수상 및 공로상)/서울대 음악대학 졸업/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 석사 및 최고연주자과정(최우수 성적) 졸업/ 독일 베를린 한스 아이슬러 국립음대 강사 역임/ 現在 한세대, 선화예중,고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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