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9-05-20 13:42]
<음악의 모든 것 - 84>
공연평가단으로 연주회에 참관하며


지난 424() 오전 11, 우면당에서의 다담(茶談) 콘서트427() 오후 3, 예악당에서의 혹 되지 아니하다라는 공연의 평가단으로 선발되어 한 주에 두 번씩이나 국립국악원을 찾았다. 국악분야에는 다소 문외한이었던 내가 공연에 대한 기대감으로 방문했는데 올해로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창단 40주년을 기념하여 기획한 공연이라고 한다.

 

프롤로그공연평가단으로 뽑혀서 다녀오게 되었는데 정말 기대 이상의 공연이었다. ‘다담 콘서트는 북토크 콘서트처럼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좋은 글귀를 낭독해 주고 중간 중간에 연주가 있는 콘서트였다. 2만 원짜리 공연티켓을 제공받아 중앙 앞자리에서 관람했으며 '혹 되지 아니하다' 공연은 3만 원짜리 공연티켓으로 두 공연모두 앞자리 가운데여서 정말 잘 보였고 소리전달 또한 훌륭했는데 아마도 평가단으로 참여해 좋은 자리를 선정해 주었던 것 같았다. '혹 되지 아니하다' 공연은 테마가 불혹이었는데 마흔이 된 80년생에게는 티켓의 50%를 할인해 주기도 했다. 필자도 개인적으로 공연을 보려했다면 50% 할인을 받을 수 있었겠네~라며 하~^^ 국악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지만 평가단으로 참여해서인지 아직까지도 여운이 남아 설레고 있다. 나에게 국악의 여운이라니먼저 민속악단 창단 40주년을 맞은 국립국악원을 잠시 소개하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국립국악원은 신라의 음성서(音聲署) -고려의 대악서(大樂署) -조선의 장악원(掌樂院) - 이왕직 아악부(李王職雅樂部)로 이어지는 전통을 계승한 곳으로 천여 년의 역사를 가진 국립예술기관이다. 이왕직 아악부는 1897(광무 원년)에 종래의 장악원(掌樂院)을 교방사(敎坊司)로 개칭하고 제조(提調) 이하 772인의 인원을 두었으며 1907(융희 원년)에는 교방사를 장악과(掌樂課)로 고쳐서 궁내부(宮內部) 예식과(禮式課)에 부속시키고 국악사장(國樂師長) 이하 305인의 인원을 두고, 김종남(金宗南)이 초대 국악사장이 되었다. 한일합방 이후 장악과는 아악대(雅樂隊)로 바뀌고 아악사장 이하 189인의 인원으로 줄었다. 이 중에는 양악군악대에 밀려서 시종원(侍從院) 부속 구 군악수(軍樂手)인 취고수(吹鼓手)들이 일부 편입되어 있었다. 그 뒤 인원을 84명으로 줄이고, 다시 57명으로 줄였다. 1917년에는 아악생 양성소를 두어 제1기생 9(뒤에 18)을 모집하여 수업연한을 3(뒤에 5)으로 하고 음악실기·음악이론·일반학과를 수업하였다. 1920년 일본 음악학자 다나베(田邊尙雄)의 건의로 1922년에는 당국의 보다 나은 지원을 받게 되었다. 1925년에는 아악대에서 아악부(雅樂部)로 명칭을 고치고 당주동(唐珠洞) 청사에서 운니동(雲泥洞)으로 옮겼으며 광복 직전까지 종묘·문묘 제향에 제례악을 연주하고 아악생 양성·아악 방송·악서 및 악보 편찬·악기 제작 등의 활동을 계속하였다. 이왕직 아악부의 전통은 현 국립국악원이 이어받고 있다. 서울의 본원뿐만 아니라 민속국악원, 진도의 남도국악원, 부산국악원에서 우리의 전통음악인 국악의 계승과 발전을 위한 다양한 노력과 시도를 하고 있는 공간이다. 국립국악원은 국악공연과 국악문화 보급 그리고 국악학술 연구를 주요 업무로 하는 곳인데
먼저 국악공연을 맡고 있는 연주단에 대해 소개해보려 한다.

 

정악단궁중, 풍류음악과 정가 등을 전승.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제례악을 비롯하여 궁중연례악 등 주로 조선시대 궁중에서 연주된 음악들을 복원하고 연주하는 곳도 바로 정악단이다.

 

민속악단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판소리를 비롯하여 산조, 민요, 병창, 사물놀이 등 다양한 민속악 분야의 연주 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소리 극, 굿 음악 등 다양한 장르의 우리 민속악을 을 전하는 악단이다.

무용단2009년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처용무를 비롯해 선유락, 포구락 등 궁중무용을 보존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다.

창작악단우리 전통음악에 기반을 두고 창작 국악 개발 등에 힘쓰고 있다.

 

연주홀 우면당은 230여석의 소극장으로 국악과 관련된 음악, 무용, 연회와 퍼포먼스까지의 공연이 가능한 공간이다. 예악당은 800여석 규모의 중, 대형극장으로 음향 반사판이 방패연 모양으로 되어 있다. 연희풍류극장에는 700석 규모의 야외공연장 연희마당과 약 130석 규모의 좌식형 실내 소극장 풍류사랑방이 있다.

 

 

혹 되지 아니하다민속악단 창단 40주년 기념공연

민속악단은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판소리를 비롯하여 산조, 민요, 병창, 사물놀이 등 다양한 민속악 분야의 연주활동을 펼치고 있다. 1979년 국립국악원이 개설한 중요무형문화재 상설극장의 연주자를 모집하면서 창단한 민속악단으로 40년을 맞아 근원을 되짚어보는 공연으로 펼쳐졌다. 창단을 축하하는 뜻 깊은 이번공연은 국립국악원 단원들이 무대에 올라 신명나는 민속악을 선보였다. 예술 감독을 역임한 명인, 명창들의 화려하고 농익은 선율은 마음을 울렸고 그간의 역사를 말해주듯 영상에 담긴 주요 인물들의 인터뷰나 당시 공연을 재현한 특별무대는 전통음악의 진수를 보여주었는데 어찌나 진행이 멋지고 훌륭하던지공연 중간 중간에 이어지는 흑백 인터뷰 영상들이 배우 이원종의 매끄러운 진행으로 소개되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었다. 창단 초기에 있었던 일들이 민속악단의 역사가 되어 흑백 영상으로 소개되는 모습을 지켜보며 어떤 이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모습을 지켜볼 때는 울컥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동안 표현할 수 없었던 과거사가 민속악단의 희로애락을 대변하듯 과거와 현재가 파노라마 되었다. 눈과 귀를 사로잡은 '혹 되지 아니하다'는 민속악단의 정통성과 정체성을 확인하는 의미를 담은 5개의 주제로 펼쳐졌다.

하늘이 열려 땅 생길 제 - 우주 하늘이 열리고 땅이 생길 제 삼라만상이 생겨나고 세상소리가 생겨난다. 사람사이 희로애락을 넘어서는 노래하고(), 춤추고(), 불고(), 뜯고(), 타는() 우리 음악의 원천을 그린다.

1984’상쇠를 추억하다. - 현재 민속악단의 연희부로 확대된 사물단의 초창기 모습을 담은 영상과 연희부 기원의 중심에 있던 상쇠 김용배를 추억하는 무대가 펼쳐진다. 삼도 풍물굿, 웃다리 풍물, 호남 우도굿 등으로 민속음악의 뿌리라 할 수 있는 굿 장단을 선보이고 설장구와 판 굿 공연을 통해 흥과 신명을 높인다.

1981’ 민속음악 연주회 - 민속악단 창단 이후 첫 공연으로 기록된 국립국악원 민속음악 연주회에서 선보였던 산조합주를 현 민속악단 단원들이 재구성하여 연주하며 38년 전 무대에 올랐던 김무길 명인의 인터뷰와 공연 기록 영상도 함께 소개되었다.

 

이 공연에서 느낀 점을 말하라면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지만 우선 최고였다고 말할 수 있다. 국악에 대한 전문성도 없기 때문에 사실 큰 기대는 안 하고 갔었지만 국악연주회 공연을 보며 처음으로 눈시울을 붉혔다. 그것도 마음에서 우러나는 눈물이었다. 그리고 순간 느낀 생각은 모두가 리듬의 마술사였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움직임이 흐트러짐 없이 매순간이 흠잡을 떼 없이 정교했다. , 꽹과리, 장구소리가 장엄한 하모니는 가슴을 울려 심장을 끓어오르게 했으며 끊일 듯 이어지는 박자는 한동안 가슴조이며 언제쯤 마무리될까 궁금증을 더했다. 마치 재즈에서의 잼(Jam)이 연상되면서장구와 꽹과리 연주의 손목스냅이 이토록 멋진 것이라니! 박자 쪼개는 것이 정말 예술~ 그 자체였다. 꽹과리 두드리는 모습이 가슴 벅찰 정도로 멋져보였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정신없이 연주를 보고 있는데 징을 치던 분이 그 다음 무대에 장구를 가지고 혼자 등장했다. 살짝 한국무용도 곁들이며 장구를 치는데 그 큰 무대가 꽉 채워지며 무대를 압도했다. 잠시 후 7명의 남자들도 장구를 가지고 나와 그 리더를 주축으로 하나가 되어 신명을 돋운다. 처음 보는 엄청난 엇 박의 리듬과 함께 일체감이 넋을 잃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 엇박이 얼마나 일사분란하게 이뤄지는지 전환이 매우 자연스럽고 주저함이 전혀 없었다. 멜로디가 없었지만 흥이 저절로 일어났다. 왠지 모르게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정말 행복한 순간이었다. 나중에 그 리더 분을 알아보니 박은하(연희)님이었다. 국악의 실체가 이런 것인가! 옆자리 아주머니께서는 앉아서 덩실거렸고. 그 옆 따님으로 보이는 여자는 국악을 하는 학생인지 거문고를 연주하듯 본인 무릎을 거문고 삼아 연주에 몰입했다. 국악으로 관객과 하나 되는 공간이었다. 예전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앞 광장에서 김덕수 국악 사물놀이패 공연을 보았을 때도 이렇게까지 감동스럽거나 행복감에 울진 않았는데국악에 대한 묘한 매력에 흠뻑 빠져버렸다. 산조를 보통 독주로 하지만 앙상블로 만들어 오케스트라로 했는데 정말 아름다웠다. 오케스트라처럼 멜로디를 악기별로 서로 주고받는 게 너무 인상적이었는데 이번 공연 덕분에 거문고가 무엇인지 아쟁, 가야금이 어떻게 생겼는지 확실히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 형식으로 나눠준 떡도 정말 맛있었다. 민속악단이 롱런하고 우리 국악이 더욱 흥행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겼다.

 

다담(茶談) 콘서트

국립국악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으로 전통 자산인 우리음악을 동시대 예술로 이어나가는데 앞장서는 예술기관이다.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연이라 할 수 있는차와 이야기가 있는 국악 콘서트다담 콘서트가 올해도 어김없이 국립국악원을 찾아왔다. 매달 마지막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새로운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한다. 새삼 놀라운 것은 이 공연이 올해로 10년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다담 콘서트는 연주 한 시간 전에 과일, 초콜릿, , 따뜻한 차를 마실 수 있다. 다과를 제공해주시는 분들의 한복의상도 엄청 아름다웠고 꽃을 이용한 다과 상차림이 정말로 멋지고 아름다웠다. 음악과 책을 좋아하는 필자에게 제격인 콘서트였다. 게다가 내가 좋아하는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의 작가인 백영옥 님과 내가 좋아하는 피아노 연주라니~! 피아노 독주는 아니었고 피아노 명창 고영열 님의 노래도 함께했는데 피아노 연주가 정말 좋았다. 황수경 아나운서의 노련미 넘치는 사회가 가슴에 와 닿았는데 가장 공감되는 것은살아가면서 마음속에 자기만의 문장을 새기고 되뇌면서 살아가자는 거였다. 백영옥 작가의 문장은 책 '청춘의 문장'속의 글귀인 '오늘이 제일 어린 날이다.'라는 문장이라고 한다. 필자도 매일매일 되뇌는 문장이 있는데 책 '나는 내 나이가 좋다'글귀 중 '나날이 정리하는 마음으로' 라는 글이다! 그렇게 한번 생각하고 하루를 보내면 뭔가 더 하루가 소중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이 문장을 좋아한다. 국립국악원의 40주년 기념공연이 내 나이를 상기해보는 시간이 되어 행복감을 더해주는 한 주가 되었다!^^






[기사입력일 : 2019-05-20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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