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19-05-20 14:19]
<음악가 이야기> 프란츠 사버 포코르니(Franz Xaver Pokorny)
100여 곡의 교향곡을 남긴 고전시대 체코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


국 적체코

출 생17291220

사 망179472

 

그의 인생프란츠 사버 포코르니 또는 프란티셰크 사버 포코르니(František Xaver Pokorný)는 체코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린 연주자였다. 또한 프란티셰크 사버 토마스 포코르니(František Xaver Thomas Pokorny)는 같은 성을 가진 다른 보헤미안 음악가와 관련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문자 그대로 겸손이라는 매우 일반적인 이름이라는 것에서 이러한 관련성을 증명하는 것은 어렵다. 특히 그와 프란티셰크 사버 얀 포코르니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프란츠 사버(Franz Xaver)17291220일 므네스테츠 크랄로베(Městec Králové)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고향을 떠난 그는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에서 요제프 리펠(Joseph Riepel, 1709-1782)로부터 바이올린 연주를 배웠다.1750년 발러스타인(Wallerstein)으로 이동한 그는 오팅겐 발러스타인의 궁정 관현악단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했다. 1753년 오팅겐 발러스타인의 백작 필리프 카를(Philipp Karl, Count of Oettingen-Wallerstein, 1722-1766)의 지시에 따라 만하임(Mannheim)으로 가서 요한 슈타미츠(Johann Stamitz, 1717-1757)와 이그나츠 야콥 홀츠바우어(Ignaz Jakob Holzbauer, 1711-1783) 그리고 프란츠 사버 리히터(Franz Xaver Richter, 1709-1789)에게 음악 지도를 받았다. 1754년 백작은 음악가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그에게 급히 궁정으로 돌아올 것을 명령했다. 이때 백작은 그에게 합창단의 감독 지위를 분명히 약속했다. 그러나 백작은 그가 1766년 그에게 청원했을 때까지 이 약속을 지켜지지 않았다. 1766년 결국 오팅겐 발러스타인의 백작 필립프 카를이 사망한 후 그는 3년에서 4년 정도의 기간 동안 궁정을 떠날 수 있는 허가를 신청했다. 이에 따라 그는 자신의 생애 마지막 시기를 다시 레겐스부르크에서 투른-탁시스의 넷째 왕자인 카를 안젤름(Karl Anselm, 4th Prince of Thurn and Taxis, 1733-1805)의 관현악단에서 보냈다. 그는 그 해부터 왕의 예배당에 합류했으며 그의 묘비는 그가 왕실 실내악 음악가임을 기록한다. 그는 179472일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에서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
그에게서 음악의 귀속문제는 어려움이 있다. 지금까지 100개가 넘는 교향곡이 그의 작곡으로 돌려졌으며 그 중 57개가 논쟁의 대상이 된다. 다시 말해 학자에 따라 거의 150여 개의 교향곡이 그에게 귀속되었지만, 그의 저작은 그가 죽은 이후 작품 일부에서 그의 이름이 지워지는 일이 발생했다. 동시에 이들 작품은 테오도르 폰 샤흐트(Theodor von Schacht, 1748-1823)의 레겐스부르크 관현악단(Regensburg orchestra)에 의해 다른 저자의 이름으로 대체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 이들 50개 이상의 작품에 대한 그 진의와 관련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귀속된 교향곡은 일반적으로 클라리넷(clarinets), 오보에(oboes), 팀파니(timpani)와 트럼펫(trumpets)을 사용하여 현악기(strings), 2대의 플루트와 2대의 혼을 위한 4악장 작품이다. 선율은 대중적인 양식으로, 진정한 교향곡 발달의 경우라기보다 순차적인 복주를 사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외에도 관악기와 하프시코드(harpsichord)를 위한 45, 2대의 혼(horns)을 위한 3개가 포함된 수십 개의 솔로 콘서트와 같은 많은 작품이 그에게 귀속된다. 그의 아들 보니파츠(Bonifaz; 프란츠 사버 카를Franz Xaver Karl, 1757-1789)는 오르간 연주자이자 사제였다. 32살에 요절한 그는 작곡도 했지만 그의 음악은 어느 것 하나 보존되지 못했다. 그의 또 다른 아들로 알려진 요제프 프란츠 포코르니(Joseph Franz Pokorny)는 분명히 마이너 음악가(minor musician)에 머물러 있었다.

 

 


【현재 녹음된 작품

·Concert n. 2 in B flat for clarinet

·Concerto in E flat for clarinet

·Concert in do for two organs

·Concert for organ and chamber orchestra

·Concerto in E flat for two horns and orchestra

·Concerto in fa for two horns and orchestra

·Concert in re for flute and orchestra

 

 

그의 스승, 프란츠 크사버 리히터프란츠 크사버 리히터(Franz Xaver Richter)1709년 체코 동부의 모라비아(Moravia)에서 태어났다. 체코 출신의 독일 작곡가이다. 만하임에서 요한 시타미츠와 함께 만하임 악파를 탄생시키고 고전파 심포니를 창조하는데에 일조한 인물이다. 시타미츠 사후에 만하임 악단을 이끌다가 만하임의 테오도르 공이 뮌헨의 바바리아 대공 자리로 옮기자, 만하임을 떠나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의 악장으로 옮겼다. 그의 기악적 대위법은 푸가양식에서 나왔으나 형식은 보다 자유로웠고 당대에 많은 존경을 받았다. 홀레샤우(Holleschau)의 교회 기록 보관소에 그의 출생 기록이 남아 있지는 않지만 그곳에서 태어난 것이 분명하며 그밖에 알려진 것은 없다. 17404월 수도원장인 안젤름 폰 라이힐린 멜데크(Anselm von Reichlin-Meldegg)의 합창대 부지휘자로 선임되었으며 그 후 5, 6년간 활동한 듯하다. 1747년경에 이르면 만하임의 선제후 카를 테오도어(Carl Theodor)의 궁정음악가들 가운데 그의 이름이 보이며 출판된 오페라 대본에서나 때로는 은밀히 활동하는 세련된 연주자로 거명되기도 한다. 마르푸르크(Marpurg)가 궁정 관현악단의 제2 바이올린 연주자에 그를 포함시켰을 뿐 그를 기악 연주자로 볼 만한 동시대의 다른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

그의 교향곡 가운데 6곡이 1744년까지 파리에서 출판되었고 그는 또 만하임에서는 종교음악 작곡가로서 인정을 받고 있었다. 1748년 선제후의 권유에 따라 성금요일을 위한 오라토리오 <라 데포지치오네 달라 크로체,La deposizione dalla croce>를 작곡했다. 한편 교사로서도 활동했고,1761-1767년 사이에는 요한 푹스의 <그라두스 아드 파르나숨,Gradus ad Parnassum>을 바탕으로 작곡법을 저술하여 카를 테오도어에게 헌정했다. 그의 중요한 제자들로는 J.M.크라우스(J.M.Kraus),H.J.리겔(H.J.Riegel),카를 슈타미츠(Carl Stamitz),페르디난트 프렌츨(Ferdinand Fraenzl),유명한 피아노 제작자이자 음악가였던 플레옐((Ignace Pleyel)등이 있다. 1750-1760년대에는 대표적인 작곡가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정형화된 효과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만하임의 분위기에 차츰 환멸을 느꼈다. 17694월 요제프 가르니어(Joseph Garnier)의 뒤를 이어 스트라스부르성당의 합창단 지휘자가 되었으며 그곳에서 그의 연주와 작곡 활동은 점차 종교음악으로 기울었다. 비록 만하임에서 유행하던 양식을 의식적으로 배제하기는 했지만 만하임의 대표적 작곡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다.

1769년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스트라스부르 성당(Strasbourg Cathedral)의 합창지휘자로 일하였다. 1789년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Strassbourg)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초기작품은 오스트리아의 바로크 음악적인 특색이 강하며 독일 남부보다 런던이나 베를린 같은 음악적으로 보수적인 곳에서 더 많은 환영을 받았다. 그의 기악적 대위법은 엄격한 푸가 양식에 의한 것이지만 형식은 보다 자유로웠으며 당대에는 많은 존경을 받았고 당시의 압도적인 호모포니 악장들에 생기를 불어넣는 방법으로 자주 채용되었다. 리히터는 동료였던 요한 시타미츠와 달리 보수적인 바로크 정신도 계속 지켜나가려고 부단히 노력하였던 음악가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작품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클라리넷 콘체르토 No.w B flat major 였다. 곡이 좋아서 작곡가를 보니 모르는 사람이었다. 바로 찾아보니 구글에서는 정보가 거의 없었는데 또 유튜브에서 찾아보면, 작곡한 곡이 굉장히 많은 것이다. 호른 협주곡, 클라리넷 협주곡, 플루트 협주곡부터 해서 두개의 오르간 협주곡까지!!! 다양한 악기들로 풍성하게 작곡한 그를 나만 몰랐던 것인지아니면 많은 사람들이 모르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약간은 모차르트 느낌의 그의 곡들이 굉장한 작품이라는 건 음악을 들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참고출처:음악사가 있는 고전 박물관>






[기사입력일 : 2019-05-20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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