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20-02-24 16:31]
<음악의 모든 것>
작곡가들의 이름을 딴 음악원을 찾아서


기고:이주은

프롤로그러시아의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이나 폴란드의 쇼팽 음악원 그리고 독일의 많은 학교들이 작곡가의 이름을 따 학교이름을 지었는데 이번호에서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학교명에 대해서 정리해 보았다. 필자가 방문했던 학교로는 함부르크 음대, 한스 아이슬러, 브레멘 음대, 드레스덴 음대, 프라이부르크 음대, 뮌헨음대, 라이프치히 음대, 잘츠부르크 음대, 빈 음대 그리고 폴란드 쇼팽음악원 등이다. 그곳에서 공부를 했거나 필자가 시험을 치기 위해 방문했던 일도 있었으며 기악이나 성악연주자 시험반주를 위해, 또는 연주회나 레슨을 받기 위해서 갔던 적이 있다. 십 여 군데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하나같이 좋은 기억들로 연상된다. 비록 시험에 떨어진 학교도 있지만 모든 게 즐거운 추억들로 자리 잡고 있다~ 하하핫.^^

한스아이슬러 베를린/Hochschule für Musik Hanns Eisler Berlin한스 아이슬러(1898.7.6 ~ 1962.9.6.)는 독일의 작곡가로 동베를린에서 국립음악원 교수를 지냈다.외인부대, 살렘의 마녀등의 영화음악과 동독 국가(國歌), 다수의 가곡 ·관현악 ·실내악곡 등을 작곡하였다. 라이프치히 출생으로 빈음악원에서 A.쇤베르크에게 사사하고 처음에는 12음 기법으로 작곡하였으나 나중에는 대중을 위한 음악에 뜻을 두게 되었다. 1933년 나치스의 탄압을 피하여 미국으로 갔다가 47년 귀국하여 당시의 동베를린에서 국립음악원 교수를 지냈으며 그 곳에서 인생을 마무리했다. 그는 영화음악에도 일가견을 지녔으며, 그가 작곡한 영화에는 외인부대(1933) 살렘의 마녀(56) 등이 있다. 또한 동독 국가(國歌)를 비롯하여 많은 가곡과 관현악 ·실내악곡 등을 작곡하였다.

에센음대/Folkwang Universität der Künste폴크방(Folkwang)은 게르만 신화에서 사랑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여신인 프레야(Freya)로부터 유래된 이름이다. 폴크방 대학은 당시 음악가였던 슐츠-도른부르크와 젊은 안무가였던 요스가 함께 뮌스터에 세웠던 "움직임, 언어, 음악을 위한 베스트팔렝 아카데미"1927년 에센으로 옮겨 "폴크방"이라 명명하며 그 역사를 시작하게 된다. 이 때부터 폴크방은 모든 예술분야를 한 곳에 모아 종합예술을 지향하고, 예술을 통합하는 학교로 활동한다. "움직임, 언어, 음악을 위한 베스트팔렌 아카데미"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무용, 음악, 언어(연극)를 전공하는 학생들을 공동으로 교육하여 평범한 사물의 본질을 커다란 사고의 틀 안에서 이해하도록 하고 있다. 폴크방은 예술을 일반 대중의 생활 속에 가까이 접근 시키려 했던 초기 교육자안 칼 오스트하우스의 이념을 계승한다. 그래서 폴크방은 예술적 재능은 있으나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여 예술을 더 이상 어떤 특권적인 것이 아닌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했다.

아우크스부르크 음대/ Leopold-Mozart-Zentrum der Universität Augsburg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출생하였다. 볼프강 A.모차르트의 아버지이다. 1743년 이후 잘츠부르크 대주교의 궁정음악가를 지냈다. 1757년 궁정작곡가의 칭호를 받았으며 1763년에는 부악장이 되었다. 막내아들 볼프강을 위한 음악교육과 여행을 많이 한 사실은 그의 예술을 평가하는데 간과할 수 없으며 그가 남긴 서간과 기록은 볼프강 연구의 근본적인 자료가 된다. 작곡가로서도 당시로서는 유수한 존재로 교향곡·협주곡을 비롯한 많은 작품이 있으며 J.하이든의 장난감 교향곡의 원곡은 그의 작품이라고 한다. 또 저서 바이올린연주법(1756)은 고전적 명저로 꼽힌다.

드레스덴음대/Hochschule für Musik Carl Maria von Weber Dresden독일 국적의 카를 베버(1786~ 1826)는 피아노곡 무도에의 권유(독주곡), 오페라 마탄의 사수 등이 주요작품이다. 아버지 프란츠 안톤(Franz Anton)이 여러 가지 직업을 편력하여 오이틴(Eutin) 시 관현악단의 바이올리니스트, 극장 감독, 지휘자를 지낸 적이 있다. 그 때 카를이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극단과 함께 각지를 다녔다. 10세 무렵부터 정식으로 피아노를 배웠으며 잘츠부르크에서 요제프 하이든(오스트리아)의 동생 미하엘에게 대위법을 배우고 작곡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뮌헨, 프라이부르크, , 카를스루에, 슈투트가르트 등지를 전전하면서 자작의 오페라 발표를 중심으로 창작 · 지휘 활동에 종사했는데 큰 성공도 거두지 못한 채 생활하고 있었다. 1811(25) 뮌헨에서 클라리넷 주자 바에르만(Heinrich Baermann, 1784~1847)과 알게 되어 2곡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비롯하여 많은 기악 작품을 발표하고 호평을 받는다. 이 무렵 아펠(J. A. Apel)요괴담에 흥미를 느끼고, 명작 마탄의 사수(오페라)에 대한 힌트를 갖기 시작했다. 1813년 프라하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 초빙되고부터는 모차르트(오스트리아)를 비롯한 독일 오페라의 상연을 적극적으로 하였다. 나폴레옹 침략의 기운에 애국적인 곡을 많이 쓰고, 국민의 사기를 고무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둠과 동시에 독일 국민 오페라 확립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영상의 문제로 극장 측과 충돌하여 1816년 이 지위를 그만두었다. 이듬해, 이전부터 사모하고 있었던 가수 카롤리네 브란트(Caroline Brant)와 결혼 후는 방랑벽도 자취를 감추고 창작에 몰두하는데 피아노곡 무도에의 권유(독주곡)(1819)는 그의 아내를 위해 쓴 것이다. 1820(34) 이전부터 구상하고 있었던 오페라 마탄의 사수(오페라)를 완성, 이듬해의 초연은 때마침 고조되던 독일 국민 의식에 영합되어 크게 명성을 높였다. 이해에는 표제 음악적인 피아노 소협주곡도 완성했다. 빈의 케른트너토어(Kärntnertor) 극장으로부터 의뢰된 오페라 오이뤼안테 Euryanthe(1823)의 초연은 실패하고 더욱이 이 무렵부터 지병인 결핵도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어 런던의 코벤트 가든 극장으로부터 좋은 조건으로 의뢰받은 오페라 오베론 Oberon을 완성, 1826년 쇠약한 몸으로 런던에 가서 412일의 초연을 지휘한 뒤 병이 악화하여 6월에 그곳에서 40세의 생애를 마쳤다. 베버(독일)는 슈베르트(오스트리아)와 함께 독일 낭만파 음악의 초기를 대표하는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 마탄의 사수(오페라)를 비롯한 독일 국민 오페라의 확립은 그 최대의 공적이었다. 이것은 독일의 국가적 통일을 바라는 애국심의 고양이라는 당시의 사회 조건에도 바탕을 둔 것으로서, 베버(독일)는 이와 같은 넓은 사회적 시야를 가진 선구적인 음악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모차르트(오스트리아)의 아내 콘스탄체는 베버(독일)의 숙부의 딸이 된다.

뒤셀도르프음대/Robert-Schumann-Hochschule Düsseldorf클라라의 남편 로베르트 슈만은 1826(16)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의 희망에 따라 법률을 배우기 위해 라이프치히 대학에 입학, 다시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진학했다. 그러나 음악에의 꿈과 집착을 끊지 못하고, 1830(20) 마침내 어머니의 허락을 얻어 또다시 음악의 길에 전념케 된다. 작곡을 도른(Heinrich Dom, 1804~1892), 피아노를 비크(Friedrich Wieck, 1785~1873)에게 배우기 시작했으나 너무 무리한 연습을 한 결과, 오른손의 약손가락을 다쳐 피아니스트로서의 장래를 단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후에는 주로 창작에 전력을 기울이게 되었는데, 그 대상이 피아노곡에 쏠리게 된 것도 부득이한 일이었다. 1843년 멘델스존(독일)은 그가 창설한 라이프치히 음악원의 교수로서 슈만(독일)을 초빙했다. 두 사람의 교우 관계는 이미 오래되었으나 그 예술적인 경향의 차이 때문에 멘델스존(독일)은 슈만(독일)의 타고난 재질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슈만(독일)도 또한 교직에 적합하지 않아서 1년 만에 그만두었다. 그 후 드레스덴으로 옮겨 개인 교수나 합창단 지휘자로 활동하면서 창작에 몰두했다.

기타 대학으로는 브레멘 음대/Hochschule für Künste Bremen, 베를린예술대학교/우데카/Universität der Künste Berlin, 프랑크푸르트음대/Hochschule für Musik und Darstellende Kunst Frankfurt am Main, 프라이부르크음대/Hochschule für Musik Freiburg, 함부르크음대/Hochschule für Musik und Theater Hamburg, 하노버음대/하노버 음악연극미디어대학교/Hochschule für Musik, Theater und Medien Hannover, 쾰른음대/Hochschule für Musik und Tanz Köln, 라이프치히음대/라이프치히 펠릭스 멘델스존 음악연극대학교/Hochschule für Musik und Theater Felix Mendelssohn Bartholdy Leipzig, 뤼벡음대/Musikhochschule Lübeck, 마인츠음대/Hochschule für Musik Mainz an der Johannes Gutenberg- Universität Mainz, 만하임음대/Hochschule für Musik und Darstellende Kunst Mannheim, 뮌헨음대/ Hochschule für Musik und Theater München, 뮌스터음대/Musikhochschule der Westfälischen Wilhelms-Universität (Münster), 뉘른베르크음대/Hochschule für Musik Nürnberg, 로스톡음대/Hochschule für Musik und Theater Rostock, 자브뤼켄음대/Hochschule für Musik Saar (Saarbrücken), 슈투트가르트음대/Hochschule für Musik und Darstellende Kunst Stuttgart, 트로싱엔음대/Hochschule für Musik Trossingen, 바이마르음대/Hochschule für Musik „Franz Liszt“ Weimar, 뷔르츠부르크음대/Hochschule für Musik Würzburg, 칼스루에음대/Hochschule für Musik Karlsruhe, 데트몰트음대/Hochschule für Musik Detmold 등이 있다

에필로그학교명이 음악가 이름으로 지어진 것은 음악가의 고향이거나 그 음악가가 공부했던 학교이거나 그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던 훌륭한 지도자를 기리기 위해 명명된 것이 대게의 경우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를 상징하는 조형물로 음악가의 동상이나 흉상이 로비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조만간 시간을 내어 가보지 못한 독일음대 투어와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을 찾아볼 생각이다. 친한 첼로 연주자 선생님들 중에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졸업하신 분들이 많은데 유학생활 이야기, 교수님과의 레슨 시간, 수업시간, 앙상블 수업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러시아에서의 수업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간접적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기만 해도 재미있고 설렌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는데 꼭 한번은 차이코프스키 콩쿠르나 쇼팽콩쿠르도 직접 가서 연주를 듣고 싶다.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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