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20-05-07 14:32]
<이주은의 악의 모든 것-94> 음악가들의 아내



 

프롤로그필자는 운전하면서 클래식 음악 듣기를 매우 좋아하는데 특히나 오전9시부터 11시까지 진행되는 FM93.1'김미숙의 가정음악'을 매우 좋아하는 편이다. 얼마 전부터는 주말에만 첼리스트 '송영훈의 가정음악'이 진행되어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방송되는 '정만섭의 명연주 명음반'도 오랜 팬이다. 그는 배철수의 뒤를 이어 두 번째로 라디오 진행을 오래하셨다고 한다. 무려 20년 동안이나!~ 그의 멋진 목소리에다 관록만큼이나 음악에 관한 엄청난 내공은 정말 좋아할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주말 아침에는 송영훈이 작곡가 세 명의 부인에 대한 이야기로 포문을 열었다. 모차르트, 드보르자크, 그리고 하이든 부인에 대한모차르트는 사랑했던 언니 대신 그의 동생인 콘스탄테와 결혼을 했고, 드보르자크도 사랑하던 언니 대신 동생 안나와 결혼했다. 그리고 하이든은 자매 제자 두 명중 동생을 사랑했지만 결국 언니인 마리아와 결혼하게 된다. 세 명 모두 사랑하던 사람 대신에 동생이나 언니와 결혼하게 되다니!!! 어찌 이런 일이~~ 물론 모차르트의 이야기는 이미 잘 알고 있었지만 다른 두 명의 작곡가 부인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랐기에 굉장히 흥미로웠다. 게다가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아내는 최고의 악처라고 하니! 더욱 귀가 쫑긋해 관심을 이끌었는데 이번호에서는 세 명 작곡가의 아내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하이든의 惡妻 - 마리아교향곡의 아버지이자 수많은 제자를 양성한 하이든. 하지만 하이든의 아내 마리아 안나 켈러는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보다도 심한 악처로도 유명하다.

음악가 사상 최악의 악처라는 마리아는 남편 하이든을 괴롭히는데 일생을 바쳤다고 한다. 살림에는 관심도 없었고 낭비벽에 음악이라면 질색했던 그녀는 하이든의 악보를 포장지로 썼으며 머리카락 마는 종이로도 썼으며 악보 원고지를 음식 받침용으로 썼다고도 한다. 하이든은 그녀를 일컬어 지옥의 짐승이라고 할 정도로 극악한 표현을 서슴없이 했다. 하이든은 빈에서 켈러 성을 가진 가발가게의 딸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는데 두 자매 중 동생인 테레제를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하이든의 구애를 받은 테레제는 수녀원에 들어가게 되고, 테레제 아버지는 31세인 당시로서는 노처녀였던 테레제의 언니 마리아 안나를 등 떠밀어 하이든에게 넘겼다.

당연히 마리아의 결혼 생활 역시 처음부터 비극적이었다. 마리아는 정신적으로 불안했고 의부증이 심했다. 하이든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었다. 그녀는 궁정악단 소속의 모든 여자가수들을 의심했다. 사실 하이든은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악단 소속의 메조소프라노였던 유부녀 루이지아 폴첼리와 사랑에 빠졌었다. 1783년 루이지아는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이가 하이든의 자식이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하이든은 이 아이를 무척이나 아꼈다. 그래서 하이든의 아이라는 소문까지도 퍼졌었다고 한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하이든과 부인은 그렇게 힘든 결혼생활을 하였고 안나는 아직까지도 악처로 회자되고 있다.

 

드보르자크 부인 - 안나프라하에서 싸구려 하숙방을 전전하던 시절, 드보르자크는 금세공사인 체르마코바의 두 딸인 소세피나 체르마코바와 동생 안나의 피아노 교습 선생을 했는데 언니 소세피나 체르마코바는 소프라노 가수 지망생이었다. 소세피나 체르마코바는 피아노 공부를 통해서 얼른 악보 읽는 법을 익히고 난후에 프라하에서 소프라노로 성공을 거두고 독일 바이마르 궁정극장에 진출할 야무진 꿈을 꾸고 있었다. 드보르자크는 그 소세피나 체르마코바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지만 가난한 음악가 처지였던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속으로만 애를 태우고 있었다. 역시나 소세피나 체르마코바는 드보르자크의 연정을 뒤로하고 보헤미아의 귀족 카우니츠 백작과 결혼하여 떠나버렸다. 이 실연의 아픔 때문에 작곡한 연가곡이 <측백나무>이다. 실연의 아픔 속에 드보르자크는 떠나간 소세피나 체르마코바 대신 그녀의 동생 안나에게 청혼을 한다. 1873년 드보르자크와 안나와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꾸린다. 결혼 후에도 드보르자크는 처형이던 소세피나 체르마코바와도 원만하고 편안한 관계를 유지한다. 소세피나 체르마코바의 남편 카우니츠 백작도 자신의 아내 피아노 선생에 대해 호의적이어서 자신의 소유의 영지를 내어주고 곡물창고에 작곡 작업실로 고쳐 그가 쓰도록 했다. 드보르자크는 자연 속에 있던 영지인 이 창고 작업실을 너무나 좋아했고, 그 작업실을 아주 '루살카 별장'이라 이름 짓고 그가 짝사랑하던 소세피나 체르마코바 가까운 곳에서 평생을 지내기도 했다. 드보르자크의 부인인 안나는 다행히도 악처가 아닌 내조를 잘하는 부인이었다고 한다.

 

모차르트의 惡妻 - 콘스탄체1791125,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가 온몸이 불덩이가 돼 신음하다가 숨졌다. 아직 정확한 사인(死因)은 모르지만 천재음악가는 35세의 나이에 더 이상 오선지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인류의 또 다른 불행은 아무도 그의 유해가 묻힌 정확한 장소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오스트리아 정부가 최근 그의 유골을 발굴했다고 밝혔지만 진위를 장담할 수 없다는 주장이 대세이다. 이유는 아내 콘스탄체가 돈이 없다며 남편의 장례식을 최소한의 비용으로 치렀고 장대비가 쏟아지자 아프다는 이유로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망자와 함께 묻힌 모차르트의 유골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모르게 된 것이다. 많은 음악가들은 콘스탄체가 음악사에서 최악의 악처(惡妻)라고 한다. 모차르트는 결혼부터가 잘못됐다고 한다. 그는 아로이지아 베버라는 성악가를 사랑했는데 아로이지아는 궁정배우와 결혼을 한다. 모차르트는 그녀의 집에서 하숙하며 동생 콘스탄체와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콘스탄체의 후견인이라는 사람이 모차르트에게 당신과 콘스탄체의 사이는 빈에 다 알려져 있기 때문에 그녀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쓰인 계약서를 내놓았다. “나 볼프강 모차르트는 3년 이내에 콘스탄체 베버 양을 아내로 맞을 것을 맹세한다. 만일 내가 마음이 바뀌어 결혼하지 않는다면 베버 양에게 매년 300굴덴을 지급한다.”라는 모종의 계약서와 함께 모차르트는 결혼이란 굴레에 갇히게 된다. 그녀는 도박에 빠진데다 낭비벽이 심했고 바람기까지 있어 모차르트가 아무리 돈을 벌어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였다고 한다. 모차르트가 콘스탄체와 결혼한 때는 1782년이다. 세간에서는 콘스탄체의 과소비가 모차르트가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빚에 시달린 원인이라고 했다. 모차르트 본인과 콘스탄체의 과소비는 일정 부분 사실이라고 한다. 콘스탄체는 모차르트의 사후에도 남편의 명성을 누리며 살았다. 하지만 이 같은 평가와는 별개로 모차르트 부부의 애정만큼은 각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레아 징어가 쓴 책 '모차르트의 연인 콘스탄체'에서 그녀는 9년간 여섯 명의 아이를 출산해서 네 명을 잃는 아픔을 겪고 스무 차례나 이사를 다녀야 했던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남편을 보좌하고 살림을 이끌었다고 표현돼 있다. 또 콘스탄체는 소프라노 가수로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다고 한다. 모차르트가 새 오페라를 작곡할 때 해당 파트를 부르게 했고 남편 사후에는 언니와 연주 여행을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모차르트가 죽은 뒤 콘스탄체는 아들 프란츠 크사버 모차르트를 오스트리아 최고 작곡가였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 맡겨 음악을 배우게 했다.

 

에필로그이외에 말러의 부인도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교향곡의 아버지'라 불리는 하이든이<천지창조>를 작곡한 뒤에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도 그의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알 바 아니에요.”라며말러의 아내인 아르마는 매우 똑똑한데다 완벽한 미녀라는 칭송까지 자자했다고 한다. 하지만 말러가 죽은 뒤 아르마는 건축가, 시인 등과 연이어 재혼을 하기도 했는데요. 더구나 그녀는 평소 자신이 알고 지내던 거물 예술가들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책가지 써내 욕을 바가지로 먹기도 했다는군요. 하이든과 모차르트, 말러의 부인들이 조금 더 좋은 사람이었다면 음악계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기사입력일 : 2020-05-07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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