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20-06-16 16:47]
<음악의 모든 것 - 95> 독신으로 살다 간 음악가들



지난 호에서는 악처로 소문난 음악가 아내들에 대해 살펴보았다면 이번호에서는 결혼조차 하지 못했던 음악가들은 누가 있었는지 알아보기로 한다.

 

 

프롤로그지난 호에서는 작곡가들의 악처에 대해 논해보았다. 그렇게 끔찍스런 아내를 두는 것 보다는 차라리 결혼하지 않고 평생 독신으로 살아가는 것도 괜찮겠다! 라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독신으로 지낸 작곡가는 누가 있는지 궁금해 알아보게 되었다. 제일먼저 사랑하는 테레제에게 청혼을 했으나 거절당한 이후,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는 비운의 음악가 베토벤~ 그리고 세기의 삼각관계로 유명한 클라라와 슈만 그리고 그의 제자 브람스~ 클라라를 평생 사랑했다는 브람스도 독신 작곡가로 이름을 올렸다. 라벨은 어떤 이유 때문인지는 잘은 모르겠으나 양성애자였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브람스브람스 첼로 소나타 1번으로 반주 콩쿠르에 참가한 적이 있다. 연주를 마치고 한참 후에 집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심사위원인 여자 교수와 마주쳤다. 이 여자 교수께서는 필자를 보고 다짜고짜 "브람스를 아시나요?"라고 물으시며 브람스에 대해 더 많이 연구하면 좋을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함부르크의 브람스 박물관에도 가보고~ 그와 관련된 글도 많이 읽고~ 음악도 많이 들으며 브람스에 대해 알아갔다. 그 당시 브람스 곡으로는 입상을 못했지만 그 이후 같은 콩쿠르에 나가서 입상을 하긴 했는데 아이러니하게 브람스 곡이 아닌 베토벤 곡으로 입상을! ~^^

작곡가 브람스는 클라라 슈만에 대한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평생 간직하며 독신으로 지냈다. 브람스가 일생 동안 흠모했던 클라라 슈만은 14년 연상이었다. 스승이나 다름없는 로베르트 슈만의 부인이자 위대한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 슈만을 마음속에 간직하며 살아왔던 브람스의 음악에는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아픔을 암시하듯 어딘지 모를 고독감이 담겨 있다. 브람스의 교향곡 제1번은 브람스가 슈만의 [만프레드] 서곡에 감명을 받아 구상하였다. 운명의 발자국소리와 같은 1악장의 도입부에서부터 벅찬 환희로 가득한 4악장 종결부에 이르기까지 탄탄한 구성미가 돋보여 베토벤 이후 쇠퇴해간 독일 관현악의 자존심을 세운 걸작으로 평가받기도 한다. 브람스는 20살이 되어 연주여행을 하면서 슈만 부부를 만나게 된다. 로베르트 슈만(Robert Schumann)과 그의 부인 클라라 슈만(Clara Schumann)은 브람스의 작품과 그의 피아노 연주에 감동받아 브람스의 피아노 작품을 클라라가 직접 소개하는 등 든든한 후원자가 된다. 브람스의 음악성에 깊은 감명을 받은 슈만 부부는 브람스의 천재성을 단번에 알아보았고 브람스는 슈만에 머무르게 된다. 당시 슈만 부부의 일기에는 브람스에 대한 찬사가 가득했고, 브람스 역시 이들 부부에 관한 깊은 존경과 친밀감을 더해갔다. 당시 피아니스트였던 클라라는 여성으로서의 매력이 정점에 이르러 있었고 젊은 브람스가 그녀의 미모와 재능에 매력을 느낀 것은 숙명에 가까운 일이었다. 사모의 마음을 '존경', '경애'라는 말로 바꾸어 놓았고 '슈만의 부인이기 때문에 존경'이라고 자신을 타이르면서 [Piano Sonata No.2 Op.2]를 클라라 부인에게 헌정했다. 슈만의 정신병이 악화되어 라인에 투신했다는 소식을 들은 브람스는 슈만 부부에게로 달려갔고, 깊은 상처를 받은 클라라를 절망으로부터 구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기울이게 된다. 클라라의 슬픔을 달래고 공감을 나누는 동안 우정과 존경은 사랑의 감정으로 변해갔으며 마침내 그녀를 떠나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된다.

클라라가 자신보다 14살 연상이라는 사실에 대해 그의 사랑에는 조금도 방해거리가 되지 않았다. 브람스는 종종 편지를 써서 그의 끓어오르는 사랑의 감정을 직설적으로 고백하기도 했지만 클라라는 매정하게 자신은 슈만의 아내임을 상기시켰고 자신은 오직 '모성적 우정'만을 줄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암시했다. 클라라 역시도 브람스와의 관계에서 삶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기쁨을 누린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브람스의 사랑이 없었더라면 그녀는 그토록 끔찍한 재앙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브람스의 마음속에 있었던 모든 존재는 클라라였다. 그것으로부터 생겨나는 모든 힘, 모든 열정이 그의 창작에 모아졌다. 클라라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예감을 가졌고, 브람스는 성경 말씀에 의한 [Vier ernste Gesange, 네 개의 엄숙한 노래]를 쓰기 시작하여 그의 생일인 57일에 완성했다. 이 네 곡에는 사랑하는 그녀에 대한 배려와 자신의 생애의 마지막에 대한 예측을 사랑의 위대함과 함께 실었다. 189677세의 나이로 클라라가 떠났을 때 브람스는 "나의 삶의 가장 아름다운 체험이요 가장 위대한 자산이며 가장 고귀한 의미를 상실했다"며 그녀의 죽음을 요약했다.

베토벤청력을 잃고도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월광'을 비롯해 수많은 명곡을 남겨 악성(樂聖)으로까지 추앙받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베토벤은 작품의 위대성에 비해 인간적으로는 그다지 호평을 얻지 못한 듯하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고 매우 고집스런 성격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베토벤이 늘 솔로였다는 뜻은 아니다. 작곡실력만큼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했던 베토벤. 그는 그 중에서도 세 명의 여인을 특히 흠모한 것으로 전해진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은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나 생전에 많은 여인들과 친구 이상의 관계를 맺었다. 비록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결혼 약속을 한 적도 있었고, 심지어 사생아로 낳은 딸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그의 사후 그의 비밀서랍에서 발견된, 익명의 여인을 향해 썼으나 발송되지 않은 채 숨겨두었던 편지, 일명 불멸의 연인은 너무나 유명해서 누가 불멸의 연인의 수신인인지를 두고 아직까지도 갑론을박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 그리고 이 불멸의 연인 덕분에 베토벤의 연애사는 학자들뿐만 아니라 세인들까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의 연애사는 자신의 음악에도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쳤으며 그의 작품 상당수가 자신의 연인들에게 헌정되었다. 그리고 많은 연인들이 자신의 피아노 제자였는데 피아노를 가르치다가 눈이 맞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던 것이다. 사실 그가 평생 결혼하지 못한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눈이 엄청나게 높았기 때문이다. 그가 깊게 사귄 여자들은 대부분 자신과 신분이 다른 귀족이었거나 남의 아내 또는 자기보다 열 몇 살 이상 어린 여자였다. 게다가 귓병으로 잘 들리지도 않고 돈도 별로 없지만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고 성격은 전설적인 괴팍함을 자랑했으니 예비 장인 장모가 될 분들이 결사적으로 반대했던 것은 당연지사. 여자들 입장에서도 처음에는 그의 천재성과 순수함에 이끌렸지만 혼담이 오가는 상황에서 나이 차와 경제력, 성격 등 여러 가지 문제가 불거졌기 때문에 결혼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라벨여러 악기가 순차적으로 같은 멜로디를 연주하는 작품 '볼레로'! 한번쯤은 누구나 들어본 이 작품! 바로 라벨의 곡이다. 라벨은 스위스인 아버지와 바스크인 어너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예술적이고 교양이 풍부한 가문이었다. 생후 3개월 때 파이로 이주했고 어려서부터 음악적 재능을 보였고 6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운 후 14세 때에는 파이 음악원에 입학하여 피아노, 대위법, 작곡 등을 공부했다. 고전전인 형식의 틀을 활용하는 것과 새로운 것의 개척이라는 두 요인은 그가 일생동안 지녀온 경향으로 이 경향은 최초의 대표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의 재학 중 '죽은 공주를 위한 파반느'에 잘 나타나 있다. 26세 때 작품은 '물의 유희'로 피아노 기교와 서법에 새로운 음악의 금자탑을 세웠고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네의 '겨울' 등에서 대담한 화성과 음색의 표현법을 확립하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죽기 전 마지막 5년간은 실어증에 시달렸는데 이 병으로 인해 언어력을 상실했으며 단 한 줄의 음악도 작곡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름조차 서명할 수 없게 된 그에게 있어 진짜 비극은 그런 상황해서도 그의 음악적 상상력이 다른 어느 때보다 활발했다는 사실에 있다. 스트라빈스키를 비롯한 음악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가 살았던 파리 교회의 르발루아 공동묘지에 묻히게 된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며 깔끔하고 세련된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고 개나 고양이 담배를 좋아했으며 헤어스타일과 옷맵시도 늘 깔끔했다고 한다. 음악 특징으로 모리스 라벨은 클로드 드뷔시, 가브리엘 포레와 함께 프랑스 근대 인상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이다. 인상주의 음악의 성립에는 19세기 말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인상주의 회화, 시인 말라르메를 비롯한 상징주의 문학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드뷔시 작곡의 관현악곡 '목신의 오후에의 전주곡'(18921894)은 이 양식의 확립해 크게 기여하였는데 생전의 라벨은 '신의 오후에의 전주곡'을 동시대 최고의 걸작으로 꼽았다. 그렇지만 라벨의 음악은 단순히 인상주의 음악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고전적인 특징도 가지고 있다. 감각적인 음색은 드뷔시와 닮아있지만 라벨은 좀 더 고전적인 형식을 중요시했다. 명료한 선율선, 규칙적인 악절과 형식의 활용은 빈틈없는 구성력을 보여준다. 또한 이국취향은 스페인의 문화를 반영한 개성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관현악 이외에도 피아노 음악에서도 독특한 업적을 남겼는데 파리 음악원 재학 시절에 작곡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1899), '물의 유희'(1901)와 같은 작품은 피아노 기법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했다고 평가된다. 묘사적인 기법, 대담하고 모호한 화성과 음색 구사는 인상주의 피아노 음악의 새로운 세계를 선보였다. 이는 '밤의 가스파르'(1918)와 같은 작품에서 극도의 세련미가 느껴진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교향시스페인 랩소디, 발레모음곡다프니스와 클로에(1모음곡), 다프니스와 클로에(2모음곡), 발레모음곡 마 메르 르와(동화 마더 구스에서와 무곡인 볼레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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