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 : 2020-12-30 08:35]
조홍기회장 특별기고
살리에리 증후군은 진짜인가?


특별기고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에 비해 열등감을 느끼는 좌절한 음악가로 아무리 노력해도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1인자'의 벽을 넘지 못하는 사람으로 묘사되었다.

 

어느 날 살리에리는 모차르트가 대충 구상한 악보를 보고 충격에 빠진다. 초고임에도 전혀 수정이 필요 없는 훌륭한 악보였기 때문이다. 한 소절만 바꿔도 전체 구성이 무너져 버리는 완벽한 악보를 몰래 본 살리에리는 신의 음성을 들었다고 경탄하며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감탄과 경이를 느낀다. 그리고 자신에게 욕망만 주고 재능을 주지 않은 신까지 원망한다. 더구나 살리에리가 연모하였던 카테리나라는 여인마저 방탕하고 안하무인인 모차르트에게 빼앗기자 그는 앙심을 품고 끝내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모차르트를 독살한다” -<아마데우스> 영화에서

 

그러나 사실 살리에리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음악가 중 한 사람이었고 많은 부와 명예를 누렸다. 벌이가 막막한 모차르트가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말했듯이 살리에리가 모든 공연을 가져간다고 불평할 정도였고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여러모로 챙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사정이 다른 어려운 후학들에게 무료로 음악을 가르칠 정도로 그릇이 컸던 사람이다. 사실 모차르트가 그의 괴팍한 성격과 사교성이 없는 행동으로 인해 살리에리뿐만 아니라 다른 음악가들도 사이가 좋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를 싫어했다면 모차르트의 모난 성격 때문이었지! 재능과 명성을 시샘했기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살리에리 증후군이란 질투의 화신으로 기억된 점은 살리에리에게 매우 억울한 일일 것이다. 살리에리는 1750818일 이탈리아 레가노 태생의 음악가로 훌륭한 작곡가이자 존경받는 스승이었다. 유년기부터 음악에 재능을 보였지만 모차르트가 아버지의 적극적 지원을 받으며 천재적 재능을 발휘했다면 음악을 반대하는 아버지와 갈등을 겪으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과 부단한 노력의 독학으로 빈의 궁정악장이라는 명예로운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러나 사실 리에리도 어릴 적부터 형제 프란체스코와 하프시코드, 오르간 연주자 시모니와 함께 바이올린을 공부했고 15세에는 Mocenigo 가족의 후원으로 베니스로 가서 Pacini와 함께 노래하고 Pescetti와 함께 작곡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그를 빈으로 데려온 채플 마스터인 L. Gassman을 만나서 수준 높은 음악과 문학교육을 받았다.

766년에는 빈 궁정으로부터 초청을 받고 빈에 머무르며 하이든 등 당대의 저명한 작곡가들과 교류가 있던 중 1774(1788이라는 설도 있음) Gassman 이후의 궁정 작곡가이자 제국 극장의 지휘자로 임명되어 사망 직전인 1824년까지 종신직으로 그 지위에 있었다. 또한 그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음악가들을 돕고 음악 가족들을 위한 상조회도 마련했으며 정기적으로 자선콘서트도 개최했다. 당시 살리에리의 오페라는 성황을 이루었고, 실제로 빈의 많은 음악 애호가들은 모차르트보다 살리에리 음악에 더 친숙했고 더 많은 호응을 보냈다고 한다. 사후에 살리에리의 명예를 위해 그의 고향인 Legnago에는 현악기 학교와 Salieri의 삶과 일을 공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Salieri 재단이 있다. 그는 경건한 신앙을 가졌고 교회음악의 전통을 중시하며 음악교육과 행정면에서 탁월한 경륜을 갖췄다. 또한 살리에리는 베토벤, 슈베르트, 리스트, 체르니 같은 당대 위대한 작곡가들의 스승이었다. 베토벤은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을 그에게 헌정했고 슈베르트는 그의 전기 속에서 그는 고마운 살리에리 선생님으로 그렸고, 모차르트의 미망인인 콘스탄체도 아들 프란츠 크사버 모차르트를 살리에리에게 맡겨 음악을 배우게 했을 정도이다. 또한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스스로 작품 이름에 kleine(독일어로 작다는 뜻, 혹은 piccolo(이태리어로 작다는 뜻)을 붙일 만큼 겸손한 사람이었다.(이번에 연주하는 살리에리의 <Requiem>의 원 제목은 < Piccolo Requiem>인데 두 이름이 같은 곡이라는 것을 모르고 한참 헷갈렸다). 미사곡도 짧은 미사라면 여느 작곡가라면 라틴어 <Missa Brevis>라고 쓰겠지만 살리에리는 굳이 Piccolo Missa라고 표기하였다. 살리에리는 여느 궁정 음악가와 마찬가지로 연회를 위한 수많은 즐거운 곡들을 수백 곡 만들었고 그밖에도 대단히 많은 양의 오페라, 실내악, 종교음악을 써서 높은 명성을 쌓았는데 43편의 오페라 중에 가장 성공한 것으론 Danaides(1784)Tarare(1787)을 꼽을 수 있다.

 

2인자의 살리에리 - 1825년 살리에리가 사망 한 지 몇 년 만에 알렉산더 푸쉬킨은 질투와 죄를 바탕으로 "작은 비극"모차르트와 살리에리 (1831)를 썼다. 이어 1898년 작곡가 림스키-코르사코프는 푸쉬킨의 이 희곡을 바탕으로 모차르트와 살리에리 (1831)라는 같은 이름의 오페라로 각색했는데 여기서부터 살리에리 증후군이라는 말이 시작된다.

- 학교 다닐 때 공부도 별로 안하는 것 같은데 항상 나보다 성적이 높던 친구, 단 한 번에 우수한 대학과 원하는 과에 합격한 친척들, 졸업 후 누구나 부러워하는 좋은 직장에 합격한 동창, 회사 생활하면서 윗사람들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급속 승진한 동료, 자식들 아파트 금새 마련하고 멋진 배우자와 결혼한 이웃, 자식들 공부 잘하고 결혼해서 아이 잘 낳는 형제, 내가 이사 가는 곳은 집 값 안 오르고 옆 동네만 쑥쑥 올라가는 등 나만 제외되는 세상에 사는 듯한 그런 기분이 살리에리 증후군으로 우리의 일상에 잠재되어 있다, 이런 심리가 적당하면 자극제가 되어 발전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지만 지나칠 경우에는 역효과를 일으켜 공황장애나 우울증 등의 심각한 질병으로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특히 요즘에는 SNS로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에 남들과 끊임없이 자신을 비교하며 사는 세상이 되어버려 자동적으로 살리에리 증후군 자유롭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를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니다. 이런 감정들을 통해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자기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면 된다. 인류는 이런 갈등에서 생존 경쟁의 원동력을 삼아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누구나 제1바이올리니스트가 되려고 한다면 어떻게 오케스트라가 구성될 수 있겠는가! 모두가 대통령이 되려고 한다면 누가 국민이 되는가! 우리 사회가 모두 1등을 키우려고 부추기고 있고 장사를 하려고 하니 거기에 휘말린 우리는 정신적으로 방황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도 좁은 음악계에서 스스로 자신의 음악을 하기보다는 내가 2인자 또는 루저가 된 건 아닌가 생각 하며 힘들어 하지말자. 예술은 개인의 창조력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의 나의 예술이 중요하다. 나의 위치에서 스스로 자리매김하는 자존감으로 활동하면 된다. 열등감을 극복하는 길은 자존감을 키우는 일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자존감은 스스로를 존중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마음이다. 살리에리 증후군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어도 대폭 줄이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의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 자신을 가치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 인정하고 나도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도전하여야 한다. 이번에 지휘자이자 교육가이셨던 유명무 선생의 추모음악회를 준비하면서 살리에리 <레퀴엠을 선택했다. 한국 합창음악의 선구자 중 한 분인 유병무 선생님은 평생 합창과 음악교육의 길을 가셨던 한국 음악계의 큰 별로 누구보다 가장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다 늘 밝고 환한 미소로 웃으며 뛰어난 교수 방법과 지치지 않는 열정으로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부드럽고 온화하게 응답해 주셨던 분이다.

우리나라 남성합창단(한국남성합창단, 코리아남성합창단)의 대부이시며 합창 교육에 우뚝 서 계셨던 선생님은 평생 전문 합창지휘자이자 예술학교 교사, 대학 교수로 계시면서 후진 양성과 국민 음악교육에 몸소 실천해 오셨다. 특히 유병무 선생님은 우리나라 합창계에서 모나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불평 없이 묵묵히 합창의 길을 걸으셨다. 그래서인지 당신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기보다는 2인자의 길도 마다 않는 모범을 보여 준 분으로서 음악계 현실에 참 귀감이 되는 분이다. 조수미 신영옥 등 세계적인 제자를 직접 키우셨던 선생님의 교육 열정과 늘 겸손했던 성품은 음악가 살리에리와 데자뷰가 된다. 이번 살리에리의 <Requiem>을 유병무 선생님에게 바치며 또한 살리에리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시선이 바로 잡히길 바란다.

조홍기회장/한국코다이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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